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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Oct 31. 2024

숲을 가꿀 수 있다는 우리 가족의 착각

살구나무,  꽃모종, 멧돼지와 식물도감

돌멩이를 옆으로 밀고 비닐을 걷어낼 때마다 상쾌한 흙내음이 나를 반긴다. 새로 난 틈을 통해 몽실몽실 뿜어져 나오는 물방울이 숲을 뒤흔든다. 봄이 왔다. 작년 여름에 심어둔 모종이 겨우내 잘 잤는지 비닐을 벗기며 인사했다. 아뿔싸, 그런데 건강하지 못한 것 같다. 추위를 견디라고 비닐을 덮어두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뿐사뿐 내려앉은 눈의 무게를 생각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3년 동안 공들여 키운 뒤 새로운 보금자리를 맞이한 모종들은 눈이 녹아 얼어버리는 바람에 짓눌려 있었다. 춥다고 선산에 갈 생각을 안 했는데 눈이 온 뒤에 와서 한 번씩 비닐 위를 쓸어줘야 했나 보다.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초록빛 이파리들이 짙은 갈색으로 변한 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 숲에서의 이별은 짙은 갈색이구나. 나는 오늘 죽음의 새로운 색을 발견했다.      

 

숲을 가꿔보겠다고 뛰어들었던 것은 남편이었다. 삼십 년 전, 어머니를 묻고 산길을 내려온 열다섯 살의 남자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고 고단한 삶의 터널에서 겨우 빠져나온 참이었다. 영원한 상실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그 숲길을 이제 새로운 색깔로 칠해보고 싶다 했다. 


그가 처음 선택한 것은 살구나무였다. 아이들이 크면 살구나무 길 아래에서 연분홍색 비를 맞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더하고 싶고 열매를 맺으면 잘 수확해서 사람들에게 주황빛 기쁨을 나눠주고 싶다 말했다. 그래서 그는 살구나무 묘목 100주를 과감하게 산에 심었다. 낑낑거리며 흙을 파고 나무를 심고 물은 흠뻑 주는 과정에서 그는 슬펐던 과거를 희망찬 오늘로 덧대고 온 듯했다. 남편은 새로 심은 나무가 죽을까 봐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까 오매불망 고개를 쭉 빼 일기예보를 기다렸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 사람한테 저런 면이 있었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비 소식이 한동안 없는 날엔 아침 일찍 산에 올라가서 물을 흠뻑 주곤 내려왔다. 그런 그를 보며 지나가던 등산객들은 무얼 심어둔 것이냐고 계속해서 물었다. 그 물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우리는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살구나무는 욕망의 손길에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으면 모두가 행복한 살구나무 길을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사유지를 통과하게 해주는 고마움은 모두 잊고 그 속에 있는 것까지 파내야 후련했나 보다. 강제로 입양 간 살구나무들은 어떻게 됐을까. 터전이 갑자기 옮겨지는 바람에 모두 몸살을 앓다가 짙은 갈색빛으로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남편의 첫 번째 실험은 끝이 났다.      

Image by Joe from Pixabay

살구나무 숲의 꿈이 파헤쳐지고 그다음 해에 우리는 꽃나무 두 그루를 들고 다시 산으로 향했다. 이번엔 다섯 살짜리 딸과 함께였다. 할머니가 왜 커다란 흙 속에 누워있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아이는 나무를 처음 심어 보는 설렘에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반대편 높은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던 새가 자신이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다는 것을 공기의 진동으로 알려준다. 내년 식목일에도 함께 손잡고 올라와서 예쁜 나무를 심자고 아이가 들떠있다. 꽃나무를 계속해서 심으면 할머니가 알록달록한 동산에서 행복할 거라며 새로운 희망을 심고 발로 꾹꾹 밟아 내려왔다. 시간이 조금 흘러 벌초할 때가 다가왔다. 아이는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삐뚤빼뚤한 글씨를 종이에 한가득 써서 아빠에게 건넸다. 지난번에 심은 나무에 편지를 걸어 달라며 눈을 반짝인다. 

그날 저녁, 남편은 아이에게 비보를 전했다. 나무가 잘 있는지 올라가 봤더니 멧돼지가 파낸 흔적으로 가득했다고 말이다. 뭉툭한 색연필로 꾸민 편지가 나무에서 방긋 웃고 있을 줄 알았던 아이는 뜻밖의 멧돼지 소식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큰소리로 “멧돼지 이 나쁜 녀석!”하고 소리친 뒤 으앙 하고 울어버렸다. 남편이 말한다. 지난번에도 꽃모종들을 잔잔히 심어놨는데 멧돼지가 다 파버렸다고, 멧돼지가 참 영특해서 그런지 자신의 영역에 새로운 것이 생기면 잽싸게 와서 없애버린다고 말이다. 하필 어머니 산소가 있는 쪽이 멧돼지 가족의 영역이라니 슬픈 일이다. 등기에도 적혀 있지 않은 산의 주인 때문에 우린 알록달록한 꽃의 동산을 꾸미는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숲은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 숨 쉬는 곳인데 인간들의 언어로 꾸려가려 했으니 어쩌면 우리가 나빴던 것 같다.     


숲에서 무언가 해보려는 우리의 노력이 번번이 실패하자 점점 지쳐갔다. 화분도 잘 가꾸지 못해 부스러트리던 내가 겁도 없이 숲을 바꿔보려 했으니 그 욕심이 과했던 것 같다. 함께 어우러지며 숲에 우리를 받아달라고 부탁했어야 했는데 너무도 성급하게 인간의 손길을 땅속에 이식하려고 했나 보다. 그래서 계획을 바꿨다. 소박하게 베란다에서 식물들을 가꾸며 우리 집부터 작은 생태계를 꾸려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무에 물을 주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두고 매일매일 환기를 시키며 숨을 트이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숲에 가려면 큰마음을 먹고 가야 하는데 베란다 한가득 초록 이파리들이 나를 매일 반겨주니 이보다 더 쉬운 일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딸아이는 식물도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파리를 따서 종이에 붙이고 어떤 나무의 이파리인지 적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 가는 길에도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는 길에도 마음에 드는 이파리가 있으면 채집해 와서 자신의 도감을 꾸렸다. 가끔 길에서 이파리를 따기 귀찮으면 베란다에 가서 이파리를 뚝 떼다가 종이에 붙여놓곤 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사는 동네도 숲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숲은 꼭 깊고 거대해야 할 것 같아서 괜히 선산을 꾸며야 한다는 욕심을 냈던 것인데 오늘 보니 숲은 내 옆에 있었다. 짙은 녹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닌데 괜히 찾아 헤맸구나 싶다고 생각하며 이파리를 붙이는 딸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제야 우리 딸아이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숲과 같다는 뜻의 딸 이름을 괜히 여러 번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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