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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Nov 08. 2024

내가 삐뚤어져서, 글이 안 써졌다.

커피 우유 한 팩을 비우고 하니 앉아 오늘도 엉망진창이라고 읊조리고 있다. 며칠째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기에 너무도 당황스럽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하나 더 꺼내왔다. 컵에 옮겨 마셔도 되지만 이 정도 양은 한 번에 마실 수 있다고 자부하며 모서리에 가위질하고 입을 댔다. 삼각형 모양의 비닐 팩을 잡고 꿀꺽꿀꺽 넘기자 연갈색 액체가 순식간에 없어진다. 달달한 커피 우유를 두 팩이나 비웠는데도 글은 여전히 나올 생각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은데 어쩜 이렇게 한 문장도 완성하지 못하고 있을까. 억지로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켜고 아무거나 써보자며 폭력적으로 타다닥 두드린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심정이었다. 두들기고 두들기니 뭔가가 나오기 시작하는 듯 보인다. 얼추 두 문단 정도 완성했다. 이제는 글이 써지려나 싶어 한 번 읽어본다. 글을 쓸 때는 기억의 조각들을 생각보다 잘 이어 붙였다고 생각했는데 문단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읽어보니 도대체가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다. 이건 글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억지로 구겨 넣어진 쓰레기가 분명하다. 검은 글자로 이루어진 배설 덩어리는 지금 내 머릿속을 대변해 주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까.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쓰지 못해서 글이 안 나오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공개하지 않을 글을 써보자며 내 속에 있는 것을 다 끄집어내려고 해도 글은 그림자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이제 글을 못 쓰는 사람이 됐나 보다.      

Image by StartupStockPhotos from Pixabay

간혹 유명한 작가들의 인터뷰 중에 글이 안 나와서 너무 괴로웠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런 대목을 만날 때마다 글이 왜 안 나오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글이 안 나오는 날이 내게 왔다. 예고도 없이 너무 갑자기 말이다. 나는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그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인데도 글이 나오질 않았다. 생각나는 대로 마구 뱉어내어 휘갈기는 일기장마저도 세 줄 이상을 못 쓰는 날이 계속됐다. 그렇게 또 며칠이 흘렀다. 베란다에서 앞산을 내다보니 며칠 사이에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은 것이 보인다. 혹시 저 이파리들이 모두 떨어지고 그 위에 눈꽃을 피울 때까지도 글이 안 나오는 건가. 난 이제 정말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된 걸까.     


문을 열어 밤새 가둬놓았던 공기를 내보내니 차갑고 축축한 바깥의 공기가 집으로 몰려온다. 코끝 온도가 점점 내려가기 시작하자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것은 정말 뜬금없는 깨달음이었는데 내가 삐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맞아. 나 삐뚤어지고 있어.’ 지금 나는 정면을 향해 있지 않고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불쾌한 떨림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갑자기 내가 싫어졌다.   

  

가끔씩 내 삶의 경계를 넘어오는 이들이 진저리 나게 싫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항상 화가 났다. 요청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잘못하고 있으니 알아두라며 은근슬쩍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마치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서 알려주는 것처럼 포장했으나 어른인 나는 그 속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단박에 눈치챘다. 저 사람은 자기 삶도 버겁다는데 왜 내 삶을 자기 일인 듯이 말하는지, 설마 나를 시기 질투하는 것인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렇게 단정을 지어버리기엔 공주병 같은 느낌이었달까.      


속 시원하게 그러지 말라고 말은 못 하면서 부디 그 사람이 자기 일과 타인의 일, 자기 생각과 타인의 생각,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분리해 주길 기도했다. 그래서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며 침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물론 그건 그저 소망이었고 그들은 내 삶의 국경선을 언제나 쉽게 넘어오며 내 마음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떠났다.      


결국, 그 사람과 대판 싸우고 관계가 끝이 났다. 비엔나소시지처럼 끊임없이 폭탄 문자를 보내던 사람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자 더는 연락해오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이 습관적인 거짓말들로 나를 모함했던 것들을 낱낱이 밝혔다. 내가 모를 줄 알았나보다. 그 사람은 자신의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자 숨어버렸다. 그렇게 드디어 관계가 끝이 났다. 나를 하루라도 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날뛰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조용해지니 이상했다. 드디어 평화가 온 것인가.   

Image by brittywing from Pixabay

내 삶을 침범당하지 않는 삶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상처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사람의 인생이 처절히 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변 사람 모두와 싸우다가 도의적으로, 법적으로도 해서는 안 될 짓들을 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그 인간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며 코웃음을 쳤다. 타인의 성과를 뺏고 자신의 경력을 과장해 거짓으로 포장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니 밟아간 모든 걸음이 모조품이었을 것이다. 곧 처벌을 받겠지 싶어 즐거웠다. 어서 빨리 모두가 저 사람의 실체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제 판사라도 된 듯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더 빨리 더 크게 아주 폭삭 망하길 바랐다. 그러면 나는 ‘여봐, 그 사람 최악이었다니까’라면서 사람들이랑 떠들어야지. 내가 힘들었던 건 다 그 사람이 정말 나빠서였다고 말해야지 하고 꿈을 꾼 듯하다.


그렇게 망해가는 소식만 거의 3년을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부터 그 사람 얘기는 너무도 듣기 싫어졌다. 진절머리 났다. 분명 그 사람이 잘못했는데 ‘다들 그렇게 하지 않나, 걸리지만 않을 뿐이지’라는 말이라도 들으면 분노했다. 저런 사람은 망해도 싼데 왜 두둔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마여야만 한다. 그런데 왜 이해하려는 사람이 등장하는 건가. 그럴 때마다 나는 이성의 끝자락에 나를 붙들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여기서 더 나아가면 나랑 그 사람이랑 뭐가 다르냐며 말이다.    

Image by kinkate from Pixabay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삐뚤어졌다. 사람을 좋아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사랑하던 내가 좋은 말만 입에 담기 위해 애썼던 내가, 나쁜 생각과 험한 말들을 내뱉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내가 단순히 욕을 하며 쯧쯧 혀를 차는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나는 이제 이 사건을 더는 관찰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멈추라고 얘기해야 했는데 그 사람이 탄 폭주 열차는 어딜 향해 가는지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소식을 전하던 이에게 이제 더는 나에게 그 사람 소식을 전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저질렀다. 진저리가 나도록 참혹한 이 상태를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싫었다. 그 사람은 여전히 망해가는 중이므로, 재판은 길면 3년은 더 이어질 것이므로 더 이상은 듣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내가 제대로 살아야겠으니 말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던 나는 오랜 시간 삐뚤어진 채 서 있었나 보다. 삐뚤어진 내 발걸음이 나의 몸을 어긋나게 했나 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더는 안되겠다 싶어서 마음을 추스르며 책을 읽어나갔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손도 댈 수 없었던 책들을 온전히 품었다. 자신을 둘러싼 시대와 환경이 너무 지옥 같아도 예쁜 마음, 깊은 생각, 아름다운 말들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을 찾아 헤맸다. 분명 내가 바로 서면 무엇이 나를 할퀴고 지나가더라도 이겨낼 수가 있는 것 같았다.


삐뚤어진 나를 교정하며 이 글을 썼다. 한 편이 완성된 걸 보니 나는 이제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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