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다음 시간에는 자기 사주를 들고 오라고. 절대 다른 사람의 사주를 들고 오지 말라고 말이다. 이 수업은 나의 사주를 이해하는 명리 강의인데 꼭~ 다른 사람 사주를 들고 오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의 사주 말이다. 수강생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수강생들이 왜 다른 사람의 사주를 들고 왔는지 이해가 간다. 그 사람이 너무 싫어서 앞으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데 사주를 읽을 실력이 거기까진 안돼서 그랬을 것이다.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고 나는 가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사주를 열어본다.열어볼 때마다 이왕이면 완전히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싫어하는 사람의 사주를 매해 열어봤는데 밥 잘 먹고 돈 잘 벌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너무 싫어서 그런지 몰라도 모든 글자가 엄청 좋아 보인다. 짜증 난다. 이 사람은 왜 좋은 걸 가지고 있는 거지? 나이가 들수록 돈을 더 많이 버는 것 같네? 그런 생각이 들자, 괜히 열어봤다 싶다.
재밌는 일이 발생했다. 내가 해석했을 때는 분명 안 좋은 글자가 하나도 없었는데 들려오는 소식에는 인생이 꼬일 대로 꼬였다는 것이다. 어라? 분명히 계속 물이 들어와서 즐거운 것 같았는데? 노를 저어요~ 강을 따라서~ 즐겁게 즐겁게 저어요~ 행복해져요~ 돈이 들어와요~ 이런 느낌이었는데? 이상하네? 들어본즉슨, 돈이 들어오긴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누군가와 계속 싸우고 있단다. 그 소식을 듣고 생각했다. 아이고, 쌤통이네. 그럴 줄 알았어. 사주를 다시 열어보니 월주에 있는 천간과 지지의 글자 모두 대운과 충돌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모두 요동을 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10년간 충돌의 기운을 가지고 살겠네. 처음엔 정말 좋아 보이기만 했던 글자가 이제 서서히 나쁜 글자로 보여간다. 명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보는 것은 내가 이미 해석한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었기에 진짜 폭삭 망했으면 했는데 현실은 내 생각과는 반대로 펼쳐질 때가 많으니까. 나는 이미 그 사람은 잘 살 것이라는 가정하에 사주를 열어봤을 것이다. 여덟 글자(사주) + 두 글자(대운) + 두 글자(세운)의 해석이 내 마음에 달려있나 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잘 못 지낸다는 소식을 들으면 즐거운 줄 알았다. 처음엔 고소했던 것 같다. 근데 열흘이 멀다 하고 계속해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폭삭 망해서 결론이 난 것이 아니라 망해가는 중의 소식이 실시간으로 들려오니 슬슬 짜증이 난다.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힐 때 썼던 언어와 행동들이 더 또렷하게 생각이 났다.싫어하는 사람이 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엄청 후련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한테 했던 것처럼 지금 싸우는 사람들이랑 대화한 카톡 기록을 캡처해서 여기저기 뿌리겠지? 싸우는 사람이 답 안 하면 폭탄문자를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로 보내겠지? 그동안 자기가 괴롭히고 하대했던 건 쏙 빼고 자기가 엄청 잘해줬는데 배신했다고 떠들겠지? 싸우는 사람이랑 다른 사람이 한 편이 될까 봐, 이간질하냐고 바쁘겠지? 이런 생각이 떠오르며 내가 받았던 고통이 생생히 살아났다.
언젠가 한 번 그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복수를 한다 한들 후련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우리의 뇌는 반복적으로 기분 나쁜 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복수를 해서 성공하더라도 가해자의 행동이 소 되새김질하듯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부정적 정서를 두고 감정의 암이라고 한다나. 그래서 나는 이제 그 사람의 소식이 듣기 싫다. 가해자가 했던 말이 또렷이 살아날 때마다 내가 괴롭기 때문이다. 앞으론 싫어하는 사람의 사주를 열지 않기로 다짐한다. 아. 나도 사람인지라, 그래도 폭삭 망했다는 최종결론은 듣고 싶다.
참고자료 : 최고야 기자. “‘연진아, 나 지금 되게 신나’ 복수 끝난 문동은은 과연 행복했을까”, 《동아일보》. (2023.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