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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Apr 11. 2024

아카시아

그 해 아카시아는

만개하다 못해

처절하도록 지천이었고,

홀로 선

  목련은

수줍게 화답하곤 했다.


그 해 아카시아는

진한 향기로 

산 아래 달동네를

하얗게 하얗게 물들였고,


볼 끝을 스치는 향기는

소녀의 심장을

쏟아지는

별빛 장대에

대롱대롱

매달아 두었다.


그 해 아카시아는

밤마다 밤마다

보랏빛 꿈을 찾아가는

소녀의 길잡이가 되어

함께 떠났다.

말동무가 되어



(해설)


매서운 봄바람이 앞섶을 휘젓는

2학년 때

우리는 성동구 중곡동 이 끝에서

 은평구 저 끝으로 이사를 갔다.


신당동ㅡ동대문시장ㅡ세운상가ㅡ종로학원거리ㅡ서울역 삼거리 ㅡ불광동으로 꺾어 들어 하루 3시간을 콩나물 버스에 매달려 다녔어도,

마냥 좋았던 


똑같은 집들이 나란히 있는

언덕배기 맨 끝자락에 있던 우리 집.


휑한 마당 한 편의 목련은

맨 먼저 맞아주었고

호박에 풋고추.

대파를 숭덩숭덩 썰어

뚝배기에 끓여둔 된장찌개는

 기다리곤 했다.


5월  초저녁,

낮은 담장에 기대

언덕아래 집들을 바라보면


휘황찬란한 불빛이

들뜬마음을 부추기고

집뒤 돌 산의 아카시아는

그 진한 향기를

뿜어대다 못해 

코 끝을 저리게 했다.


눈을 들어 바라본

보랏빛 하늘에

우수수 쏟아지는 별이

온 천지를 물들이던

여고 시절


배 부르고 아프지 않으면

마냥 행복하기만 하던

꿈 많고 웃음 많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카시아 향기가 

지금도 코 끝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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