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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Mar 28. 2024

네가 가던 날, 비는 내리고

하늘과  땅이

온통 회색빛 먹물로 감아 돌고

철 이른 봄비가

주책없이 내리는 날


뭐가 그리 급했는지

눈 맞춤도 못하고

자리에 누운 지 열흘 만에

넌 그렇게 떠났구나.


아직 사료가 많이 남았는데,

좋아하는 간식이 한통 하고도

반이나 남았는데,

배변패드가 한 박스가 남았는데,

뭐가 그리 급해 총총거리고 떠났느냐


가는 줄은 알았지만

이별이 항상 서글퍼지는 건

다시 못 볼 널 향한 그리움 때문인지

남은 날 위한 허전함인지

아직 모르겠구나


너 눕던 빈자리를 치워보니

지난 18년간 살아온 네 흔적이

작은 한 박스에 모두 담긴다는 게

참으로 미안하구나.


네 온기가

네 체취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겨졌는데.


가는 길 외롭지 말라고

깨끗이 빨아 놓은 셔츠 안에

30센티도 안 되는 작은 몸을 누이고

삽질 몇 번에 사라져 간 네 모습.


고마웠고

사랑한다.

먼저 간 쭈쭈와 따가

길라잡이가 되어


아프지 말고

배고프지 말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에서


맘껏 뛰어놀고

맘껏 웃고

맘껏 즐기렴.




(해설)

기르지 못한다는 주인 품을 떠나

내게 온 지 18년 만인 오늘.

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뒷다리를 못써 앉은뱅이처럼

질질 끌고 다니기 육 개월,

음식을 거부하고 설사로 움직이지 못한 지 열흘 만에.


의사 선생님은 지병인 요로결석인지(노견이라 수술 못해), 척추문제인지,

신장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의료사고로 병원에서 떠난 쭈쭈가 생각나.

검사도 입원도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완치도 못하면서,

약으로만 연명하는 건

내 욕심만 부리는 것 같아.


새벽에 소리를 질렀지만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친탓인지 그냥 잠든 내가 원망스럽다.


집사인 아들의 반팔 티셔츠에 감싸

미리 봐둔 자리에

그대로 뉘었다.

불과  5시간 전에.

너무도 작아 삽질 몆 번에

묻혀버렸다.


내리는 봄비 때문인지

눈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멍따, 쭈쭈. 바리 그리고 뚱이까지 모두 가버리고

내 곁엔 이제

아무도 없다.


내일은 모르겠지만 오늘밤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어릴땐 사탕도 잘 까먹었던 뚱이)


(사납긴 하지만 웃음많던 뚱이)


(도도녀 처럼 혼자놀던 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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