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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Feb 05. 2024

나 가거든

흔적을 남기지 말아라. 자식들아.


장례식장도 번거로우니

안치실에 두었다가

하루 만에 화장해서


산속 이름 모를 나무라도 좋으니

그 아래 가루를 묻어주렴.


묻는 것도 번거로우면

그냥 뿌려도 좋지만

흩어지지만 않게 한 곳에 두렴.


가족납골당은 넘 무서워.

살아생전 시집살이도 서러운데

죽어서까지 함께 있는 건

고통이란다.

 

예전 부탁했던

수의대신 한복을 입히고

울음대신

세미트롯을 24시간 틀어달라던 것도


살아생전 저질렀던 죄가

조금이라도 사그라들게

천도재를 지내달라 했던 것도

모두 부질없는 것.

취소하련다.


소리 없이 왔다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인 것을.


이제야 깨달았으니

그래도 난 철이 든 거겠지?




(해설)


예전에 죽음이 무엇인지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고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기 때문에


두 분 부모님을 보내고도

밥도 잘 먹고 잘 잤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억은 자꾸만 더 또렷해진다.


 스님을 모시고 동시에 신부님을 모셔달라던 엄마와 달리

자식 짐이 되기 싫다던 아버지의 유언대로 일일장을 지내면서

내 죽음도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곁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고

떠나보내면서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모든 건 티끌처럼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이라는 걸.


이제 13년만 있으면

할머니였던 엄마나이가 된다.

고관절 수술 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병원을 돌다 떠 돌다

당신이 애착을 갖던 물건 하나 만져보지 못하고

한평생 쓸고 닦았던 물건 한 번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그렇게 가시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왜 저러는지... 원망도 했던

그 나이가 가까워 오면서도

난 아직 엄마처럼 한평생 살 것처럼

청춘인줄 안다.

또래보다 주름살이 없어 10년은 더 젊어 보인다는 아이들의 말이

때로는 더 우울하게 들린다.


눈물도 많고 서러움도 많이 타는

나는 육 춘기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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