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면 배낭을 둘러매고 인근사찰을 찾아갔다. 무늬만 불자였지만 텅 빈 법당에 앉아있으면 산새와 바람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혀 줬다.
처마 끝 풍경소리는 피아노연주보다 더 아름다워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단다.
노 스님은 젊은 처자가 절에 오는 게 드물다며 갈 때마다 먹을 걸 챙겨주셨다.
공양주보살님의 손 맛은 잊힌 고향의 맛 같았다. 오신채도 넣지 않고 별다른 양념도 없이 쓱 쓱 비벼낸 음식들은 맛집보다 더 감칠맛 났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갈수록 엉망이었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없었다. 과 애들이 하는 행동은 유치해 보였다. 어쩌다 피우던 담배는 줄담배로 변했고 혼술 하는 날도 많았다.
모범생인 같은 방 c와는 달리 선배들도 가까이 오지 않았고 나도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주말이면 미팅을 하느라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 난 옥상으로 올라가 멀리 보이는 들판과 하나둘씩 켜지는 네온사인이 새로운 출발 선에 선 것처럼 설레기까지 했다.
강의에 빠지는 날이 많자 부모님에게 연락이 갔나 보다. 전화로 팩폭 하던 엄마는 학교로 찾아왔다. 결강과목이 많아 재 수강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는 내 등 짝을 몇 대 때리다 달래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하라고는 안 할 테니 강의시간에 빠지지 말고 졸업이나 제대로 하라고.
엄마가 강할 때는 반발이 생겼는데 눈물을 보이니 마음이 약해졌다.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려 했지만 자꾸만 '난 왜 여기 있는가' '난 뭘 하려는가' 하는 의문으로 머릿속이 하얘질 때가 많았다.
교사가 된 다해도 아이들 앞에서 가르 칠 자신도 없었고, 생각은 더 깊어만 갔다.
엄마가 왔다가신 지 일주일도 안 돼 이번 엔 아버지가 오셨다.
부모님을 보며 느끼는 게 없느냐고도 물었다.
다른 애들은 대학에 진학도 못 하고, 간다 해도 학자금대출이니 뭐니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하느라 정신없는데 넌 배가 불러 정신을 못 차리냐고 닦달하셨다.
좋은 대학에 가서 든든한 기업에 취업한 니 형제들을 보라며 베알도 없느냐며 아픈 곳을 찔러댔다.
아버지의 한 마디 한마디는 내 가슴을 긁어 생채기를 냈고, 그곳에 굵은소금을 뿌려대듯 따가워 미칠 것만 같았다.
자라는 내내 언니. 오빠와 비교당하는 게 싫었는데 그래서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데 자존심까지 뭉개는 아버지가 밉고 원망스러웠다.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모든 게 불편했고 의욕도 없고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 말씀대로 애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짐만 되는 것 같았고, 나 하나쯤 없어져도 잘 나가는 언니. 오빠가 있다고 생각하니 무거웠던 마음도 가벼워졌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결정하고 나니 모든 것이 편해졌다.
배낭 하나만 둘러메고 기숙사 문을 나서면서 바라본 내 방 앞 떡갈나무 잎이 석양에 붉게 물들어 잘 가라 손짓해주고 있었다. 아니 웃음을 띄고 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소주 두 병과 담배 두 갑을 사서 학교 옆 야산으로 올라갔다. 평소 강의를 빼먹고 자주 가던 곳이지만 등산로 위는 길이 없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어느 정도 올라갔을 까???
정상 인근에 있는 둔턱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기로 했다.
처음 배울 때는 입으로 만 뻐끔거렸는데, 지금은 익숙하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코 끝으로 나갈 때는 알 수 없는 희열조차 일어났다.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정상으로 올라가면 아래가 발 끝에 모두 보이고 탁 틀인 들판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침엽수가 많아서인지 앞을 가로막아 생각과는 딴 판이었다.
가져온 소주에 고등학교 때 먹던 우울증 약을 함께 털어 넣었다.
목 넘김은 싸하면서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다.
마요네즈는 없어도 되니 생맥주에 노가리가 새삼 그리웠다.
우울증 약은 의보상 28일분 밖에 주지 않지만, 지난번 의보없이 2주 분을 더 타와 내 계획에 차질을 주지는 않을 듯했다.
바바리를 벗어 바닥에 깔고 하늘을 보며 누웠다. 나뭇잎이 뭉쳐있는 곳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땀이 식어서인지 한기가 몰려왔다.
아직 별은 뜨지 않았지만 주책없는 상현달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뭘 하느냐고 묻고 있다.
아직까지 내 의사대로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태어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원해서 된 건 없으니 마지막은 내가 선택해서 하고 내 맘대로 하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은 뜻대로 할 수 있다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동안 잘 참았다. 넌 최선을 다 했어.'
달은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해 뿌옇게 흔들렸다. 바보같으니라구. 고개를 내미는 별을 하나, 둘, 셋... 세려는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100까지는 셀 줄 알았는데...... 한 순간에 졸음이 밀려와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꿈을 꿨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 느꼈는데 태어나면서 아직까지의 삶이 조각퍼즐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모아졌다.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항상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그래도 마지막 선택은 내가 할 수 있으니 승자라고 부르짖고 싶었다.
그녀가 발견된 건 수요일이란다.
주말이라 기숙사에선 집에 간 줄 알았고 소식도 없이 일요일 점호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니 집에 연락을 했나 보다.
실종신고를 했지만 경찰에선 일탈한 성인의 가출이라고 판단했는지 경과를 두고 보자고 했다. 결국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부모님의 성화에 부랴부랴 찾기 시작했단다.
탐지견이 있어 발견이 가능했다고 들었다.
사후경직이 일어난 상태지만 아직 화장이 지워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이들에겐 아직 20대 초반의 풋풋함이 그대로 각인될 수 있어 참으로 탁월한 선택을 한 것 같아 기쁘기까지 했다.
다만 주변의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러워 짜증이 났다.
떠나려다 내 모습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니 잠든 듯 평화로워 보였고 곁에는 갖고 있던 화장품과 담뱃갑 그리고 신발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흐트러지지 말아야 할 텐데...... 뒹구는 것은 소주병과 타다 만 꽁초뿐이다.
산 아래 가족들이 왔는지 시끌벅적했고 오열하는 엄마의 모습도 보였다.
올라오기 전 오기 전 서둘러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가족이라는 틀로 묶어 놓았던 모든 것들이 풀어지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맘이 무거운 건...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탈고까지 했으니 여유 있는 기획자로 남고 싶을 뿐이다.
그녀의 독백에 가까운 소설은 이제 끝났지만 용기가 대단한 건 틀림없는 둣 했다.
바퀴벌레 아니 거미만 봐도 호들갑을 떨던 내 아이들을 떠오르면, 두고 온 이들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으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