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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Aug 20. 2018

엄마와 주삿바늘

엄마와 아빠에게는 형과 나, 두 명의 아들이 있다.  형은 3년 전에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하기 전에도 집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엄마와 아빠에게 크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빠는 의도치 않게 무신경한 타입에 가깝고 특별한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으셔서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계실 때가 많다. 그런고로 딸이 없는 엄마를 위해 나는 부족하지만 흔히 말하는 '딸 노릇'을 하는 아들의 역할을 집에서 도맡아 하고 있다. 가족 중 그러한 것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나고, 할 수 있는 사람도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라 이렇게 된 것인지, 본래 성격이 이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형과 나의 차이를 보자면 엄마, 아빠의 생신 때 형은 용돈을 드리고 내가 찾은, 혹은 엄마가 찾은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는 반면, 나는 이번 어버이날에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써드렸고, 엄마의 생신 때는 플라워 박스를 주문해 드리고, 두 시간이 걸려 결국 재료를 다듬다 손가락까지 베어먹은 채 요리를 해드렸다.


유난히 모임이 많고 외출이 잦은 나는 엄마가 서운해하지 않도록 - 아빠는 그런 걸로 서운해하지 않으니까 - 가끔 주말에 엄마, 아빠를 모시고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는 외출 코스를 잡는다. 이건 엄마와 나의 만족을 높이고, 자랑할 게 부족한 엄마가 나름대로 자랑할 수 있을 법한 사건을 하나 만들어 놓는 데 목적이 있다. 돈을 잘 벌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들은 될 수 없지만 착하고 부모에게 잘하는 아들은 어렵지 않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정하는 건 쉽지 않다. 나와 비슷한 영화 취향을 가진 아빠와 달리 엄마는 잔인한 것도 좋아하지 않고 싸움이 벌어지는 것도 싫어하신다. 피가 나는 영화는 당연히 엄마와 볼 수 없다. 하지만 너무 과하게 대중적인, 신파를 자극하는 한국 영화류는 또 내가 보고 싶지 않아 모두가 볼 수 있을 법한 적절한 영화가 나오면 나는 꼭 엄마와 아빠를 모시고 극장에 간다.


엄마는 소녀 같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기뻐하시며, 작은 것에 서운해하고 슬퍼하신다. 나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나를 위해 무덤덤하게 계셔야 하는데, 본인 스스로가 힘들고 슬프니 그게 되지 않으시는, 그러한 분이시다. 우리 엄마가 순댓국을 먹기 시작한 건 겨우 5년이 채 되지 않았고 그 외 내장이나 잔인하거나 지저분한 외면을 가지고 있는 음식은 먹지 못하신다. 아빠와 내가 좋아하는 닭발이나 닭 근위 음식을 마지못해 해주는 엄마는  닭발을 뜯고 있는 우리를 보며, 대체 그렇게 생긴 걸 왜 먹냐는 눈빛으로 아빠와 나를 쳐다보신다. 체했을 때 손가락 하나 따지 못하심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8년 전, 내가 항암치료를 할 때 서너 번째 사이클이 끝났을 때 즈음 백혈구 수치가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백혈구 수치가 오르지 않으면 면역력이 떨어져 항암치료를 시작할 수가 없고, 감염이라도 되면 위험할 수 있어 항암치료를 하는 암 환자는 항상 백혈구 수치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나는 솔직히 마음 한편에 새로운 항암치료 사이클을 하지 않음을 기뻐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열이 올라 감염으로 한 번 입원을 한 뒤, 백혈구 촉진제라는 걸 병원에서 받아왔다. 당뇨환자가 배에 주사를 놓는 것과 같은 형태의 주사였는데, 일정한 시간에 집에서 직접 배에 주사를 놓아야 하는 약이었다. 백혈구가 하루라도 빨리 올라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데, 내 백혈구 수치가 나빠 다음 사이클이 시작하기 전까지 수치를 올려놓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근력이 거의 다 빠져 있었고, 온몸의 털은 이미 없고, 얼굴을 색소침착으로 흉한 몰골을 가지고 있었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입안 거의 전부에 항상 구내염이 있었고 항암치료를 할 때는 계속 구토를 하기 때문에 무엇을 먹기가 어려웠다. 그뿐 아니라 반복된 고통과 치료로 인해 심신이 쇠약해져 있어 제대로 된 사고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집에서 매일 게임만을 했다. 그런 내가 내 배에 주사를 놓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수의사인 아빠에게 주사를 부탁했다. 아빠의 전공은 소와 돼지로 주로 검역과 관련된 일을 하셨지만, 오래전 주사를 놓아본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자신은 주사를 놓을 수 없다며 나와 엄마의 이야기에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그래서 자주 가던 병원의 내과에 가서 부탁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 병원에서도 자신들이 그 주사를 놓아줄 수는 없다며 거절했고 엄마와 나는 그렇게 그대로 집에 돌아왔다. 결국 주사를 놓아줄 사람이 없었던 나는 스스로 주사기를 들고 배에 주사를 놓으려 했다. 하지만 몸 컨트롤이 되지 않는 나는 손이 떨려 제대로 주사를 놓을 수 없었고 서너 차례 더 시도를 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결국 아무도 놓을 수 없었던 주사는 결국 엄마가 놓아주었다. 주사를 제대로 맞지도 못하고, 손가락 하나 따지도 못하는 엄마는 아들을 위해, 아들의 배에 매일 주사를 놓았다. 그 일은 엄마가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지만, 엄마는 묵묵히 피하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주사를 놓아주었다.


엄마란 그런 사람이다. 가정에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대체로 그 일을 하는 건 엄마라는 존재다. 아빠도 물론, 해야 하는 일을 하고 돈을 벌어 오지만, 내가 말하는 일은 귀찮고 손이 가며, 누구와도 잘 맞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그러한 종류의 집안일을 말한다. 엄마는 매일 아들의 배에 주사를 놓는 것과 같은 일들을 처리한다. 하고 싶어서 하거나, 잘하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 엄마는 여전히 소녀이시기 때문에 서운해하고 슬퍼하고, 또는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때로는 자신의 감정에 빠져 아들의 속상함을 모를 때도 있지만 가정에서 묵묵히 해야 하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하신다. 엄마는 티를 내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이 너희들 때문에 하는 일이라는 티를 내지 않는다.


누구나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일을 함에도 무시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시대에 백정은 고기를 잡는 천한 사람의 취급을 받았지만, 백정이 없으면 아무도 고기를 잡는 사람이 없고, 모두가 고기를 먹지 못한다. 건물 청소를 하는 청소부들이나 환경미화원, 요양보호사와 같은 사람들도 그렇다. 사람들은 그들을 쉽게 보고 그들이 하는 일을 남의 더러움을 치우는 일을 한다 생각해 얕잡아 함부로 대하지만 그들은 더러움을 깨끗하게 치우는, 누구나 할 수 없고 누구는 반드시 해야만 하고, 모두에게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더러운 것을 치우는 사람이 더러운 게 아니다. 더러운 것을 치우기 때문에 우리와 모두에게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엄마와 같이 그들은 내 배에 주사를 놓는 것처럼, 어렵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한다. 소녀인 엄마가 더이상 소녀가 되지 않는 게 아니다. 엄마는 여전히 소녀고, 그들도 여전히 소녀이며 소년이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묵묵히 일을 하고 주사를 놓는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지 않는다. 가족들도 묵묵히 티를 내지 않는 엄마를 생각하지 못한다. 매일 같이 집에서 엄마를 부르고, 밖에서도 세상에 필요한 그들을 찾으면서도 말이다.


여전히 소녀 같은 우리 엄마는 오늘도 묵묵히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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