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처럼 관리가 필요한 공격성.
폭력성과 공격성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터미네이터 2>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대사가 있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폭력적인 본성을 타고난 존재야."
영화는 인간이 결국 서로 싸우고 죽이고 전쟁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원래 그렇게 태어난 존재라고 말하는 듯 했다.
과연 인간은 폭력성을 내재하고 태어날까?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을 두 개로 나누었다.
삶을 향한 본능(이것이 결국 생식을 위한 성적 본능으로 귀결된다.)과 죽음을 향한 본능(이것이 결국 파괴본능, 공격 본능으로 귀결된다.)이 그것이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봐도 인간, 특히 남자는 공격성을 타고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육식동물처럼 사냥과 수렵 활동에 필요했던 본능들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글과 같은 공간에서, 다른 동물이나 다른 종족을 만났을 때 폭력적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본인이 피해자가 되기 십상인 것이다.
역사를 통해 봐도 그 답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듯 하다.
그 어떤 시대에도, 그 어떤 국가도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적은 없다. 살인과 폭력에서 자유로운 국가는 없다.
아무리 복지가 발달하고 치안이 좋고 부유하고 교육수준이 높아도 범죄는 발생한다. 그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뉴스를 보면 더욱 확실해 보인다.
물론 자극적이고 이슈가 될 만한 일들을 모아 놓은 언론 자료이기 때문에 정확한 지표가 될 순 없지만 신문기사에서 우리는 거의 항상 폭력적 범죄를 접할 수 있다.
묻지마 살인이 벌어지고, 보복 운전이 폭행으로 이어지고, 성폭행과 아동 학대, 청소년들의 집단 폭행, 어린이집에선 아이들이 폭행당하고 요양원에선 노인들이 폭행당하는 등 공격적 범죄의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대한민국의 교육수준이 아무리 높아져도 이런 범죄는 도무지 줄어들 것 같지가 않다.
범죄와 전쟁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폭력적 성향은 수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청소년들이 주로 하는 게임의 대부분은 상대방(혹은 적)을 '죽이는' 게임이다.
게임의 목적 자체가 상대방을 부수고 죽이고 없애는 것이다. 또한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UFC같은 격투 종목을 좋아한다.
처음 육각의 철조망 안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봤을 때 저런 잔인한 경기를 누가 좋아할까 생각했지만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스포츠가 됐다. 옛날 로마시대 귀족들이 검투사들의 싸움을 즐기듯, 우리는 링 위에서 선수들의 경기를 즐기고 있다.
뿐만 아니다.
우리가 즐겨보는 영화에서도 총알은 기본이고 핵폭탄과 소행성까지 종종 등장해 인류를 위협한다.
폭력성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슬래셔 무비와 좀비 영화도 그 인기가 식지 않는다.
만화 역시 싸움과 폭력이 기본 소재이며 소설 등의 문학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분명히 이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며 그 기저에는 사람들의 폭력적 본성이 깔려있다.
하지만 이런 폭력성에 대한 얘기는 일상 생활에서 그리 환영 받는 얘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그 대상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범죄를 저지르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 역시 솔직한 대답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사람들은 영화나, 게임이나, 만화나, 소설을 통해 사람을 죽이거나 폭력을 행하는 장면을 수도 없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주변 사람들 중 10명 중 8, 9명은 이런 질문에 '노'라는 대답을 한다.
물론 그들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인간은 폭력적 본성을 타고 난다지만 성별에 따라, 개인에 따라 그 차이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것은 누구는 혈압이 높고 누구는 혈압이 낮은 것과 비슷하다. 사람이 타고나는 공격성의 크기도 개인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 가진 폭력성의 크기는 혈압처럼 간단히 측정할 수가 없다.
때문에 혈압처럼 관리하기도 힘들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고혈압은 뇌출혈 등의 심각한 질환을 동반한다.
저혈압도 허혈성 쇼크 등의 치명적인 결과를 유래할 수 있다. 공격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평소 가진 공격적 성향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그에 맞게 관리를 해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공격성을 가진 사람은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공격성의 해소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성이 드러날 수 있는 상황도 의도적으로 피해야 한다.
고혈압 환자들이 혈압이 올라가는 일을 피하듯 말이다. 공격성이 적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격성을 키울 수 있게 관리를 받아야 한다.
이 역시 저혈압 환자들이 혈압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공격성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이다.
그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했기 때문에 우리의 유전자를 통해 이어져 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잠재적으로 폭력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모두 범죄자가 될 거라는 의미는 아니다.
공격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 공격성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니까.
건강검진을 받아 혈압을 체크하듯, 정신 검진을 받아 자신의 스트레스 지수와 공격성 지수를 수치화 해서 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건전하게 공격성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개발되고 권유되어야 한다.
물론 대표적인 것이 스포츠일 것이다.(남자들이 스포츠와 경쟁을 좋아하는 것도 공격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밖에 명상이나 음악요법, 술 한잔, 전문가와 상담, 각종 이완 요법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공격성이 정도를 넘어서 '폭력성'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공격성은 누구나 갖고 있다.
그것은 감추거나 무시해야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류란 종족은 그 공격성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만 그 공격성이 필요하지 않을 때 분출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마치 건강을 위해 혈압과 체중을 조절하듯, 우리는 우리의 공격성 역시 조절하고 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