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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탁 Dec 12. 2020

코로나, 한계를 무너뜨리다

커피잡지 에디터가 상상하는 카페의 변화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주연을 맡으며 인기를 끌었던 배우 서예지가 CF에 등장하는 것을 봤다. 무슨 화장품인가 싶었는데 고급스럽고, 깨끗하고 심지어 예쁜 마스크를 쓰는 걸로 광고가 넘어갔다. 상상이나 했을까, 황금시간대 TV에서 마스크 광고를 보게 될 줄이야.

영향이고 트렌드고 뭐고 이뻐요. 광고지만 괜찮아 사랑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 19)로 인해 셀 수 없이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지만 그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거리두기 단계와 무관하게 일상에서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스크다. '금스크'라고 불리며 KF94 마스크가 한 장에 5000원을 하던 초기부터, 약국에서 일주일에 한 번, 한 장에 1500원에 2개씩 구매할 수 있던 중반을 지나 지금은 한 장에 300~500원 수준이 된 마스크. 가장 큰 체감이었던 마스크는 현재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체감이 되지 않는, 오히려 없으면 불안하고 생활에 지장이 있는 생필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변화다. 봄철 미세먼지 차단, 겨울철 독감 예방, 치아 치료 등 이런저런 이유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흘깃 쳐다보던 풍경에서 마스크에서 코라도 조금 삐져나오면 대놓고 불쾌하거나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풍경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한다? 말 그대로 '나라가 인정하는' 역적이 되는 세상이다.



작년 초부터 지금까지 정부 차원에서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거나 역학조사를 실시하면서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해왔다. 당장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재난문자만 봐도 이렇게까지 나라와 국민 개개인이 소통을 하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지 않은가. 물론, 일반 시민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적'이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고, 이는 사회 전반에 깔린 분위기에 합쳐지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변화로 이어졌다. 수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화상회의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수업을 듣고 질문을 하기도 한다. 명절에도 고향에 내려가는 대신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매일 같이 이루어지던 크고 작은 모임들은 취소되거나 진행을 하더라도 인원을 최소한으로 축소하여 열렸다.

2020년 12월 11일 수도권 기준, 거리두기 단계는 8일 자정부터 실시된 2.5단계다. 9시 이후에는 아예 홀 영업이 멈추는, 정부 나름대로의 강수는 연말을 앞두고 예상되는 대량 확진세를 새해가 밝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려 완만한 곡선으로 만들기 위함으로 예상할 수 있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 않나 싶을 정도지만 그 여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번 조치로 문을 아예 닫는, 영업을 중지하는 영업시설은 수도권만 13만 여개. 그나마 9시까지는 영업을 했던 헬스장, 학원, 노래방도 문을 닫고 결혼식이나 장례식 인원 또한 감축된다. 은행은 업무시간을 30분 단축하기로 결정했고, 시내버스와 지하철 또한 감축 운행한다. 수많은 조치들과 제약들의 목표는 단 하나,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를 좀 더 세밀하게 풀어보면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여유가 생겼다. 문제는 이 여유가 생각지도 못했던, 과한 여유인 데다 경제적인 여유를 동반하지는 못했다는 점 정도. 심지어 맘 편하게 나갈 수도 없다. 불편함과 다소의 눈치를 감수하고 나가더라도 갈 곳도, 할 것도 마땅치 않다. 강제로 주어진 자유시간은 이름만 자유시간일 뿐이었다. 평일은 그렇다 치고 '주말에 뭐하지?'라는 고민의 답을 쉽사리 찾지 못하게 됐다. 제 집 드나들던 것처럼 다니던 카페는 아예 안에 들어가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는 공간이 돼버렸다.



국내 커피시장은 어떤 업종 못지않게 코로나 19로 인한 직격탄을 맞았다. 가장 최전선에서 손님들과 만나던 카페들이 쓰러지면서 원부자재를 공급하던 업체들도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일회용 컵 사용규제, 음악 저작권료, 최저시급 인상 등 여느 때보다 힘든 분위기에 뿌려진 차다 못해 얼어붙을 정도의 액화질소 마냥 찬물이었다.

극적인 변화는 비교적 최근에 일어났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항상 북적이던 카페는 2단계였던 지난 11월 24일부터 시간에 상관없이 홀 영업이 금지됐다. 프랜차이즈 브랜드뿐만 아니라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는 소형 개인 카페를 모두 포함해서 테이크아웃과 배달만 가능해졌다. 지난 8~9월의 2.5단계보다도 강력한 조치였기에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는데, 한 카페의 점주는 "홀 영업 위주였던 개인 카페를 사실상 영업정지나 다름없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커피, 음료, 디저트류를 주로 판매하는 식당’이라는 애매한 기준으로 영업제한이 이루어져서 음식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의 커피나 음료 판매는 가능하다는 점은 수 건의 국민청원 등 다양한 해프닝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테이크아웃이나 배달은 가능하지만, 다양한 업종 중에서도 카페는 유난히 소비자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손님과 직접 마주하면서 일어나는 문화적인 요소가 사실상 정체되어 버리는 상황인 셈이다. 대화를 나누는 등 손님과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하는 카페는 아무리 맛있는 메뉴가 제공된다고 할지라도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그냥 맛있는 커피나 디저트를 살 수 있는 자판기인 셈이다. '카페'가 추구하던 문화, 매력적인 요소가 차단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적응하며 이를 새로운 기회로 만드는 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처럼, 커피시장 또한 새로운 변화가 지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현업자로 가장 체감이 되는 부분은 카페의 형태. 크고 웅장하면서 넓은 주차장이 장점인 빅카페, 작지만 인상적인 인테리어와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경험 등이 장점이었던 스몰카페였던 트렌드는 눈에 띄게 늘어난 테이크아웃, 배달 카페로 옮겨가면서 실용성을 강조하는 추세인 것을 알 수 있다. 1차적인 단면만 보면 이 정도의 변화가 최선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코로나 19로 인한 변화가 일시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 예상을 웃도는 수준으로 다양한 변화의 양상은 커피시장의 모습 또한 좀 더 다양하게 변하지 않을까라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301호 아저씨가 로스팅하고, 203호 아줌마가 핸드드립한 커피주세요."


먼저 일찍이 유행하던 홈카페. 집안에 나만의 프라이빗한 카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코로나 19로 인해 의도치 않은 성수기를 맞이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쁘지 않은 수준의 장비와 커피지식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홈카페를 보다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투자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의미의 '개인카페'가 머지않아 집집마다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과장 좀 섞어서 301호가 하이엔드 홈 로스터기로 로스팅하고, 203호 아줌마가 숙련된 핸드드립으로 추출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이 예약을 하는 장면이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모습으로는 본래부터 테이크아웃이나 배달 위주였던 카페들은 물론, 홀 영업이 위주였던 개인카페들도 하나 둘 테이크아웃과 배달에 주력하기 시작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최근에는 얼음을 따로 보냉팩에 담아 보내거나 심지어는 재료들을 따로 포장해서 고객이 배달을 받으면 직접 제조해서 비교적 온전하게 맛을 즐길 수 있는 '키트(Kit)'형태의 배달도 눈에 띈다. 어떠한 형태로라도 사람들에게 커피를 통해 어떠한 '가치'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도 있다.(개인적으로는 카페를 가지 못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상실감을 간소화되었더라도 일종의 '제조'라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면서 색다른 재미를 전하는 방법에 대해서 카페들이 배우기 시작했다고 생각함)


커피만큼 공급과 소비가 서로에게 영향을 지대하게 미치는 업종이 흔치 않은데, 현재의 상황, 이 독특하고 특이한 현상에 있어 공급자들은 저마다의 시도를, 소비자들은 각자 또 새로운 형태로 소비를 시도하고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또다시 소비자들의 움직임을 관할하고 연구한 카페 등 공급자들의 개선과 다양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순환이 반복되면 더욱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커피소비가 생겨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다소 극단적일 수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홀이 있는 카페는 결국 사라지면서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라는 영역 자체가 희석되고, 커피는 집이나 차 안 같은 프라이빗한 공간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이 되면서 좀 더 세밀하게 커피를 직접 제조해서 즐길 수 있는 커피키트(Coffee kit)나 자동차에 주유를 하는 것처럼 커피를 충전해서 운전을 하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태로 커피소비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이미 상상하지 못했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전 세계인들이 마스크를 항상 지니고 다니는 것. 그 어색함을 일상으로 만든 변화가 또 어떤 변화로 이어지면서 우리의 일상이 되고 새로운 생활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언제나 살아남아 위에 서는 건 강자가 아닌, 예리한 감각과 민첩한 행동으로 상황에 적응하는 자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모종의 방법으로 원하는 것, 보통은 이윤을 취하는 자들은 집요하고 치밀하고 열정적으로 임하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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