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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May 27. 2020

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에서의 1년.

너는 상수 나는 망원, 우리는 합정이었던 기억.


은행에 다녀왔다. 처음 회사를 만들 때 찾아갔던 합정역 신한은행으로. 1년을 넘게 타고 다녔던 지하철, 역, 출구, 길이었는데도 낯설었다. 아, 사람은 정말 적응의 동물이구나.


합정역 7번 출구를, 좋아했다. 나가는 방향에 시야를 가리는 큰 건물이나 나무가 없어 하늘이 잘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바쁘고 바쁜 현대 사회에 잠깐이라도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은 괜한 소리고, 그냥 좋았다.


소중한 밥, 집이 있었다. 맛짱초밥은 가성비 최고의 메뉴인 회덮밥이 있는 곳이다. 7천 원에 밥도 한 가득인데 우동도 주신다. 몇 년 동안 먹을 회덮밥은 거기서 다 먹은 듯하다. 마루 돈까스도 맛있었다. 기본에 충실한 돈까스라고 해야 하나. 스윙스가 인정한 돈까스 가게니 믿어보도록 하자. 쌀국수를 먹고 싶을 때는 리틀파파포와 미분당을 주로 갔다. 국물이 진한 건 리틀파파포가, 혼자서 먹기엔 미분당이 좋았다. 간식으로 떡볶이는 조폭떡볶이와 삭을 다녔고 중국집으로는 송탄 영빈루 합정점을 많이 갔는데 우리가 이사할 때 즈음 매장이 빠졌다고 한다.


제일 많이 간 곳은, 코리아 식당이다. 코리아 식당이라니.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이곳은 그냥 밥집이다. 처음엔, 아무리 상권이 좀 죽었어도 나름 홍대 합정인데 ‘코리아’식당이라니 이름 참...하고 지나갔는데 신기하게도 점심시간이면 매일 사람이 바글바글하는 거다. 뭐지. 뭘까. 궁금해서 들어간 곳은 김밥천국 상위 버전의 밥집이었다. 매일 반찬이 바뀌는, 있을만한 메뉴가 다 있어서 그냥 밥이 먹고 싶을 때 찾아가는 곳. 그래서 그런가 신기하게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던 연예인을 여기에서 되게 많이 봤다. 나중엔 장부를 대고 먹었는데 늘 갈 때마다 반갑게 맞이해주셔서 고맙기도 했던, 밥집이었다.


사실 밥보다 많이 간 건 카페다. 합정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거였는데 주변에 무척 맛있고 멋있는 카페가 많았다는 거다. 거의 매일 갔던 길 건너 das ist probat은 물론이고, 분위기도 좋고 맛도 좋았던 퍼셉션, 오전에 종종 머리 식히러 갔던 dukes coffee, 좀 걷고 싶다면 앤트러사이트 합정점이나 빈브라더스도 갔다. 생각보다 무척 많이 다녀서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과도 꽤 친해지고 말았는데 그것도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애정 하는 카페가 있다는 게 꽤 좋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배운 것도 있다. 이것은 부끄러운 경험이다. 초여름 어느 점심을 먹으러 나갔던 날의 기억. 동네가 동네이니 만큼 큰 오피스 빌딩 하나 없고, 3, 4층의 작은 건물에서 한두서너 명이 나오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가게에서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 사람들을 보다가 문득. 아, 저 분들도 다 월급 받고, 돈을 벌면서 생활하는,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퍼뜩. 왜 갑자기 이 당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알고 있었던 건데. 아니 뭐 무엇을 사러 가든 먹으러 가든 일하는 사람이 있고, 당연히 월급을 수당을 받는 분이라는 걸 알았는데. 그게 뭐. 그게 왜.


그러니까,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거다. 내가 막상 그 자리에서 그렇게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점심 먹으러 나오는 사람들을 보니까. 그 안에 내가 들어가니까. 커다란 오피스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만이 전부가 아니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 자영업자나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나를 상상해본 적이 없어서,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참 좁은 시야로 살고 있었구나. 내가 이해하는 건 결국 내가 경험한 지점까지구나 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도 그저 나만 몰랐던 건 아닐까, 다들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저 열심히 살고 있는 건가 반성하며 코리아 식당에 갔다는... 어느 날 합정의 점심.



두어 달이 지나서야 겨우 간신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원래는 합정에서 이사 가던 날부터 끼적이고 싶었는데. 자꾸 글에 힘이 들어가서 좀처럼 진도가 나아가지 않았다. 사무실을 얻기 전에 카페를 전전하며 편집했던 기억도, 넓디넓은 벽면을 페인트로 칠했던 하루도, 옥상 테라스에서 바라보았던 여의도의 불꽃놀이도, 옥상문에서 현관문으로 지나가버린 비둘기도 다, 모두 다 소중한 기억이라서. 버리기가 아까워서. 그만큼 잘 간직하고 싶은 시간이었고 너무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여러 모로.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생각보다 더 아주 소중한.


우리의 시간은 이제야 조금씩 보통으로 흐른다. 아주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제 여기에서도 어디에서도 늘, 합정 같기를.



2020. 0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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