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loco Mar 30. 2022

14주 1일.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

우리가 우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추석엔 조카들이 집에 놀러 왔어. 네가 태어나 처음 만날 공간에.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첫째와 두 돌이 지나지 않은 둘째. 누나는 분명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여름밤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내 눈앞에는 너무도 이쁜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지. 너도 이 글을 이해하게 될 때쯤엔 알게 될 거야. 인생 참, 말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어.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생명을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카는, 태어날 때부터 무척이나 좋더라. 작은 아빠들이 누나를 왜 그렇게 이뻐했는지 알 것 같았지. 그리고 나중엔 서운하기도 했을 거야.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조카가 다 컸다고 데면데면하는 모습을 보다니. 상상만 해도, 내가 나중에 그렇게 될 생각만 해도 분하더라고. 그렇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우선은 핑크퐁 체조를 헛둘헛둘.


충격을 좀 받았어. 핑크퐁 체조를 너무 잘해서 그런 건 아니야. 아빠는 생각보다 춤을 잘 추는 사람이라서. 어렸을 때 수학여행에서 꽤나 무대를 휘어잡았거든. (춤춘 건 확실한데 휘어잡는 것까진 착각일지도 몰라) 그날의 충격은, 다른 데에 있었어. 집에 온 조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장난감이 있었거든. 예상하지 못한.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 ‘보라미 조수’ 라고, 주말마다 우리 집을 돌아다니는 녀석인 로봇 청소기를 그렇게 좋아하더라. 우에에에엥 하고 충전하는 곳을 나와서 일을 시켰다가 다시 돌려보내고 하는 것을. 아마도 그날, 보라미 조수는 속으로 욕했을지도 몰라. 이 자식들이 나를 뭘로 보고.


그런데 그게 왜 충격, 이라고 묻는다면 나의, 우리의 장난감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야. 어렸을 때 뭘 가지고 놀았더라. 나는 GI유격대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어. 여러 개를 사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었지. 슈웅 푸웅 쉬이이이익 입으로 뭐 이런 소리를 내면서. 유격대 장난감을 가지고 왜 축구하는 이야기를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슈우우우우웃 입으로 크게 소리를 지르고 놀아서 누나의 피아노 선생님이 키득키득 웃던 모습이 생각나. (내가 몰랐을 줄 알았죠?)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자동 로봇 청소기를 가지고 노는 세대잖아. 자동에 로봇이라니. 뭔가, 뭔가 다른 세대가 아니라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어. 나는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과 어떻게 무슨 대화를 하며 살 수 있을까. 무엇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그건 너에게도 해당될 테니까.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잘 모르겠어.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거든. 분명히 아빠와 나는 엄청 다른 환경에서 자랐는데. 그 간극이 너와의 거리만큼 차이가 날까.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과거에 비해 눈부시게 빠르거든. 50년, 8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순식간에 일어나기도 하고. 그래서 가끔은 우리가 인간이니까 응당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예를 들면 예의, 사랑, 선함, 올바름 등의 기준과 가치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지 않을까. 우리는, 정말로 다른 세계의 다른 사람으로 살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기쁨아. 지금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정우

매거진의 이전글 13주 6일. 기쁨이 기쁨이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