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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Mar 20. 2024

21주 4일. 나는 너를 때리지 않겠다.

당연한 소릴 당연하게 하는 이유

기쁨아, 나는 너를 때리지 않을 거야. 당연한 소리를 당연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건 여전히 당연하지만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몰라.


꽤 많이 맞고 자랐어. 믿지 못할지도 몰라. 아빠가 좀 곱게 자란 사람처럼 보이잖아? 거기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자애롭고. 그렇지만 아빠가 자랄 땐 진짜 꽤 많이 맞고 자랐어.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아빠는 시력이 지독하게 나빠서 엄청 두껍고 비싼 안경을 쓰고 다녔는데(할아버지 닮아서 유전이야!) “안경 벗어”라는 말을 듣고 싸다구를 맞았지. 상상할 수 없겠지만 진짜야. 중학교 올라가기 전까진 할머니한테도 맞았는데 먼지를 털어내는 총채로 종아리를 맞았어. 그거 맞기 싫어서 거짓말도 하고 싹싹 빌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맞게 되었지. 나중에 커서 아빠가 힘이 세지니까 할머니는 집에 책을 던지시더라고. 처칠, 나폴레옹 등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위인들이 아빠에게 날아오는데 잽싸게 피했지. 근데 할머니 집엔 책이 3천 권이 넘게 있었어.


맞을 짓 했어. 다 크고 나서 아빠는 밥을 먹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여쭤봤거든. 왜 그렇게 때렸냐고 그러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시다가 결국엔, 넌 좀 맞을 짓 했어-로 끝나더라고. 결국 아빠만 손해 보는 대화로 마무리되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속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아빠도, 잘 알아. 아빠가 좀 곱게 자란 사람, 인데 그중에서 가장 그지 깽깽이로 지냈거든. 엄마는 늘 가슴 졸여야 했고 아빠는 속이 많이 상하셨겠지.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괴롭힌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들려줄게. 여기에 썼다간 왠지, 너가 닮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그건 좀 다음에 하기로 하자. 근데, 엄마도 하동 할아버지한테 혼나는 거 무서워서 맨발로 도망가고 숨고 그랬다는데. 엄마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맞을 짓이라는 건 무엇일까. 불리한 줄 알면서도 아빠는 꼭 되물었지. “아니, 그래서 맞을 짓이라는 게 뭔데요?” “응, 너가 한 짓ㅋ” 뭐, 어느 정도, 그러니까 감정적으로는 조금 이해가 가긴 하는데 머리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더라고. 아빠가 자랄 때는 어디서든 체벌이 가능했던 시대였거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에서 체벌 금지가 시행되었으니까.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후배가 지각했다고 혼나는데 체벌을 당했다며 선생님을 신고했는데 나중에 3학년 선배들이 그 친구를 데려가서 뭐라고 했던 적도 있어. 그만큼 체벌이, 혼나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었던 거지. 그럼 할아버지가 자랄 때는 어땠겠어. 증조할아버지는 군인이셨거든. 그것도 엄청 운동 잘하는, 체력 좋은 군인. 그래서 할아버지 삼 형제는 증조할아버지한테 기절할 때까지 맞았대. 옷을 다 벗겨가지고 집 밖으로 쫓아내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하고. 아빠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증조할아버지한테 맞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할아버지보다 증조할아버지가 훨씬 힘이 좋으셨을 거거든.


끊어내야 해. 머리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증조할아버지가 할아버지를, 할아버지가 아빠를 그렇게 혼낸 것은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게 당연했던 시절에 그렇게 본인이 커왔기 때문에. 그래서 아빠는 너를 때리지 않을 거야. 만약 아빠가 그렇게 된다면, 너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이러한 행동을 반복할 수도 있잖아. 사람이 사람을 때리지 않는다는 것, 이게 무척 당연한 건데, 솔직히 아빠도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아빠가 그렇게 지냈고 너는 아마, 몇 번이고 아빠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될 테니까. 그것도 당연한 건데, 그렇지. 그래서 이렇게라도 글을 쓰고 다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여기서 멈추겠다고.


궁금하지. 아빠는 그렇게 맞았으면서도 왜 할아버지 할머니랑 사이가 좋으냐고. 그건 할아버지가 그렇게 때리는 동안에 이것이 화풀이다-라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야. 가정폭력이 아니고 체벌이라는 게 명백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나에게 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근데, 그래도 때리는 것은 싫어.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근데, 그거 알아? 엄마는 안 그런다고 아빠가 장담할 수가 없다(…)


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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