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에서 책빵에서 쓴 글
24살의 나는 불안과 조바심 속에서 막막한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아빠의 사업은 대학교 4학년 겨울 방학에 부도가 났다. 서울 고시원에 들어간 지 2달쯤 되었을 때였다. 집에 일이 생겼으니 내려오라는 말만 반복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무슨 일이 났는지는 일이 흘러가는 상황을 보고 스스로 짐작했다. TV에서 자주 듣던 ‘백지 수표’와 ‘사업 부도’. 때문이었다. 주섬주섬 개인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책가방 안에 집어 넣었다. 다행히 집 안에 빨간 딱지가 붙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동네 가장 큰 평수의 아파트에서 대로변 단독 주택의 2층 월세집으로 숨어 들었다.
1년 후, 나는 엄마의 꿈이었던 교사가 되었다. 학기 초 행정실에 우편물이 왔다기에 내려갔는데 발신지가 국민의료보험공단이었다. 부모님께서 그동안 내지 못했던 의료보험료가 나에게 청구된 거였다. 나의 사회 생활은 부모님의 빚을 갚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부자가 꿈이라거나 차를 사고 싶다거나 명품 가방 사는 건 안중에 없었다. 그저 부모의 빚 독촉이 나에게까지 닿지 않길 바랐다.
돈이 중요한 세상이다. 행복도 여유도 돈을 주고 사는 세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에겐 돈이 중요하지 않았다. 채워도 채워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화수분 같은 것을 붙잡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있느니 내가 주도할 수 있는 것을 잡고 늘어지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일했다. 심장이 두근 거려서 믹스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날에도, 이명이 들려서 수업을 할 수 없을 때에도 나는 내 몫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이 있다. 20대 시절 철없던 나는 철학적이지 못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한 번쯤은 해봐야 했다. 눈앞의 일들에만 급급했다. 작은 성취와 실패에 일희일비하고, 어떻게든 지금을 넘기기 위해 쏟아내야 하는 에너지에 과부화가 걸렸다.
그때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 주었다면, 삶의 큰 그림을 보여 주는 가이드가 있었다면, 혹은 나만의 멘토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희희낙낙 웃으며 같이 술 마셔주는 그런 선배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고민할 수 있는, 그에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조급했고, 많은 것을 그냥 지나쳐 버렸다. 채웠다면 더 좋았을 중요한 조각들을 빠트렸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 죽을 때까지 불완전하고 갈피를 못 잡는 존재이겠지만 흔들리고 방황하는 순간을 다독일 메세지를 쓰고 싶었다. 부족하고 두려움 속에 서 있었던 20대의 나에게, 제자들에게, 또 언젠가 이 글을 펼쳐 볼 딸들에게 건네고 싶다. 기죽지 말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부도라고 생각해도 괜찮다. 단어가 주는 무게감만큼 앞으로는 더 묵직한 인생을 살아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탱해야 할 삶의 무게는 더 배워야 할 이유가 되고, 더 큰 호흡을 가슴에 품고 일어설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 인생 부도
1. See Far! (멀리 보라!)
2. 엣지를 주는 법 (How to Sharpen Your Edge)
3. 선생님, 저 자퇴할래요 (Teacher, I Want to Drop Out)
4. 아숙업 말고 너 (Not Askup, But You)
5. 자기 검열관과의 대화 (A Conversation with My Inner Critic)
6. 우산을 쓰지 않는 용기 (The Courage to Not Use an Umbrella)
7. 북유럽에 해가 뜬다는 것은 (When the Sun Rises in Northern Europe)
8. 빈둥거림을 취미로 하려고 (Making Idleness a Hobby)
9. 얘들아, 세상은 말이야 (Kids, Let Me Tell You About Life)
10. 텐트 밖은 노르웨이 (Outside the Tent in Norway)
에필로그 - 디폴트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