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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Oct 27. 2024

1. See Far! (멀리 보라!)

노르웨이에서 책빵에서 쓴 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 급훈이 있다. 새 학기가 되면 급훈을 정해서 액자에 담아 교실 정면 칠판 위에 붙이곤 했는데, 그 해에도 아이들에게 알아서 급훈을 정해 보라고 했다. 검색에 능통한 남학생들이라 각자 마음에 드는 급훈들을 쏟아냈다. 서기를 자처한 아이가 바쁘게 칠판에 받아 적었다. 그리고 몇 단계로 투표를 진행했다. 최대한 간섭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나의 전문이지만 설마 저 문장을 급훈으로 정할까 싶었다. 2차전, 3차전에서 그 문장은 여전히 살아남았고, 결승전을 치른 결과 급훈으로 결정되었다. 바로 “See Far!!”. (주의. 최대한 원어민처럼 발음하시오.)


액자를 만들어 교실에 붙여야 하는데 고민이 되었다. 장난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고 붓글씨 잘 쓰는 아이를 불러 재능기부를 부탁했다. 영어 문장 뒤에 한국어 번역도 적어 넣었다. 부탁한지 하루만에 멋진 캘리그래피 작품을 들고 왔다. “See Far. 멀리 보자!!” 처음엔 이 문장이 비속어로만 보여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어차피 결정된 것, 권위로도 물릴 수는 없었다. 좋게 해석을 해 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See Far!”라는 이 급훈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멀리 보라!” 흔한 말이지만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 문장을 해석할 수 있다.


보통 이 표현은 ‘미래를 바라보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마는데, 멀리 앞날을 내다보며 지금 최선을 다하자거나, 오늘의 작은 걸음들이 모여 미래를 만든다고 믿고 의지를 가지자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언젠가부터 미래를 저당 잡히는 오늘을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말의 시선을 앞이 아니라 좌우, 그리고 뒤까지 보는 것으로 해석했다. 지금 당장의 일이나 성적, 돈에서 눈을 잠시 떼고, 주변을 전방위적으로 살펴보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나까지 바라보는 것이다. 어떤 어제를 살아서 내가 지금 여기 이 모습인지 점검해 보는 거다. 많은 아이들이 “전 잘하는 게 없어요, 좋아하는 게 없어. 꿈이 없어요.”라고 할 때, 나는 아이들의 과거를 질문한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했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던 일은 뭐였니?”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보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인간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찾아 그것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삶의 목적과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유래한 이키가이(ikigai)라고 부르는 개념이자 표현이 있는데, ‘이키가이’란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세상에 필요한 일, 그리고 경제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일을 조화롭게 찾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다른 학교로 외부 특강을 나갔을 때 이키가이 관련 과제를 준 적이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 수학이나 역사 같은 과목명을 적거나 고민을 하다가 칸을 채우지 못했다. 성적을 제일 잘 받은 과목. 상대적으로 남보다 더 잘 받은 점수. 그것으로 나의 흥미와 재능을 결정지으면 안 된다. 예전엔 괜찮았지만 앞으로는 안된다. 그러면 무기명의 삶과 다름없는 ‘나’가 된다. 더 뾰족하고 구체적으로 나를 정의하고, 동시에 거시적인 시간관념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아야 한다.


'나'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주, 깊이 나에 대해서 숙고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키아이에서 말한 네 가지 요소가 어떻게 교차하는지 그 교집합에 해당되는 키워드를 계속 찾아 나가자. 쉽지 않겠지만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See Far!!”






프롤로그 - 인생 부도

1. See Far! (멀리 보라!)

2. 에지를 주는 법 (How to Sharpen Your Edge)

3. 선생님, 저 자퇴할래요. (Teacher, I Want to Drop Out)

4. 아숙업 말고 너 (Not Askup, But You)

5. 자기 검열관과의 대화 (A Conversation with My Inner Critic)

6.  우산을 쓰지 않는 용기 (The Courage to Not Use an Umbrella)   

7. 북유럽에 해가 뜬다는 것은 (When the Sun Rises in Northern Europe)

8. 빈둥거림을 취미로 하려고 (Making Idleness a Hobby)

9. 얘들아, 세상은 말이야 (Kids, Let Me Tell You About Life)

10. 텐트 밖은 노르웨이 (Outside the Tent in Norway)

에필로그 - 디폴트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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