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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Jun 04. 2023

지금 속도는 어떠니?

얘들아, 안녕?


한 주 잘 보냈니? 선생님은 저녁을 먹고 산책을 다녀왔어. 선생님 집 주변에는 마음을 먹으면 금세 올라갈 수 있는 적당한 높이의 산도 있고, 도로만 하나 건너면 꽤 걷기 좋은 계곡도 있어. 이제 날씨가 따뜻해져서 진짜 소를 볼 수 있는 들판도 있는데, 집에서 5분 정도만 천천히 걸어가도 그곳에 닿을 수 있어.


상상할 수 있겠니?


가끔 저녁을 먹고 가족이 모두 산책을 나가는데 오늘은 아이들이 산책 대신 학교 놀이터에 가서 놀겠다고 해서 남편과 함께 둘이서 산책을 하게 되었어. 가족 산책도, 데이트 같은 부부 산책도 다 좋아.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라서 집 뒤쪽 언덕에 있는 마을로 향했어. 조금 높이 올라가면 지는 해를 같은 높이에서 마주할 수 있거든. 한국보다 훨씬 해가 가까이 있고, 또 낮게 있는 걸 보면서 여기가 노르웨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어.



오늘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이야. 선생님 키로는 예쁘게 담기지 않아서 남편이 찍어줬어.


당신이 지켜야 할
속도는 30입니다.



예전에 선생님이 노르웨이에서 운전면허 딴 이야기를 했었지? 너희가 나중에 한국이 아닌 또 다른 나라에 살게 된다면 한국 운전면허증이 유용하게 쓰일 때가 많을 거야. 꼭 살지 않더라도 외국을 여행할 때, 운전을 할 수 있으면 갈 수 있는 곳이 훨씬 많아지겠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야.

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이야. 노르웨이 운전면허 시험에서 떨어진 한 사람이 있었어. 한국보다 훨씬 젠틀한 도로 사정을 가진 노르웨이 운전면허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거지.


선생님은 한 번에 붙었는데 말이야. (속닥속닥)

한국에서 운전병까지 했다는데 말이야. (속속닥)


시험에 불합격한 이유는 바로 ‘속도위반’이었어. 너희도 알겠지만 운전할 때 제한 속도를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해. 특히 노르웨이는 일반 도로에서 거주 지역으로 들어서면 대부분 30킬로미터 표지판이 있는데 이 표지판을 인지하는 건 보행자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중요하지. 운전면허 실기 시험에서는 속도 체크를 깐깐하게 하는데 거주 지역에 들어선 후 30킬로 속도를 준수하지 못하면 면허 시험에서 떨어지는 거야.


사유 : 거주 지역 속도위반
결과 : 불합격


30킬로의 속도로 달릴 줄 몰라서 불합격한 건 아니었을 거야. 추측해 보건대 적당한 힘으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선생님과 뱃속의 아이를 낯선 나라에서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밀려왔고 그 찰나에 속도가 줄여지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어. 덕분에 선생님은 1년 정도 자가용 없이 노르웨이 생활을 해야만 했어. 사실 좀 고단한 시절이었지.



얘들아, 선생님이 자가용 없이 출퇴근했던 걸 기억하니? 둑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시장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 반 반장 집을 지나가면서 대문을 슬쩍 쳐다보기도 했어.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하는 시간이 참 좋더라. 필요에 의해 운전을 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선생님은 운전을 하더라도 속도를 잘 내지 않는 편이야. 다른 차들이 추월하는 것도 그리 신경 쓰지 않아.


교통 흐름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나만의 속도로 운전하는 것이 좋아.


너희는 어떤 운전 습관을 가지게 될까? 궁금해. 운전대를 잡게 된다면 과속하지 말고, 지킬 건 지키면서 나아가길 바라. 누군가가 뒤에서 막 달려오더라도 조급해하지 말고, 앞에 선 차가 브레이크를 너무 밟아대서 짜증이 나더라도 이해하길 바라. 너희와 함께 달리는 차들이 부담되거나 방해가 될 때도 있지만 혼자 달리는 도로는 너무 적막할 거야. 결국은 너희 주변의 차들도 모두 각자의 길을 찾아갈 테고 너희는 너희의 속도로 목적지를 잘 찾아가면 돼.


너만의 속도로 운전하길 
네가 정한 속도로
너의 인생을 살아가길


한 주도 수고했어.


- 노르웨이에서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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