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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May 28. 2023

텐트 밖은 노르웨이02-비현실와 정상에 맞서다

얘들아, 안녕?!


지난주에 보여준 노르웨이 캠핑장 뷰 정말 멋졌지?


오늘은 캠핑 삼일 째 되는 날에 다녀온 곳을 이야기 해주려고 해. 노르웨이에 살면서 한 번쯤은 가봐야지 하고 생각했던 곳. 그곳에 드디어 가보기로 했어. 가우스타톱펜(Gaustatoppen)이라는 곳이야. 캠핑장에서도 설산이 보였으니까 아마 이곳엔 눈이 아직 많을 테고, 산 정상이니 많이 추울 거란 말이지. 그래서 가족 모두 준비해 간 겨울 옷을 단단히 챙겨 입었어.


산을 향해서 달리는 길 왼쪽에는 캠핑장에서 보이던 그 긴 호수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호수 건너 반대쪽 길가에 떠 있는 두 척의 큰 배가 눈에 띄네. 지도상으로 보면 배가 올라올 수 없는 곳인데 저 배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정박해 있는 걸까? 스스로는 바다로 나아갈 수 없는 배가 조금 애처로워 보였어. 하지만 한 척이 아니라 두 척이라 그리 외롭진 않겠지? 호수가 꽤 크니까 움직이는 것도 그리 좁게 느껴지지는 않을 테고. 



호숫가를 벗어나 양쪽 산을 낀 작은 도로를 달리다 가우스타톱펜으로 올라가는 길을 드디어 찾았어. 산길을 따라 계속 계속 차를 타고 올라가면 돼.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이렇게 높은 곳에 기차역이 있다고?


가우스타톱펜은 해발 1800미터의 높은 산이데 설악산 보다는 조금 높고, 지리산 보다는 조금 낮은 산이야. 노르웨이에는 꽤 유명한 산이 많은데, 이 산이 유명한 건 바로 끝없이 넓게 틔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산 정상이 있기 때문이야. 맑은 날씨에 이 산에 오르면 정상에서 노르웨이 본토의 6분의 1을 볼 수 있다고 해. 


그리고 하나 더!

이 산에는 산 정상에 금세 오를 수 있는 특.별.한. 기차가 있어.


선생님 일행은 굽이진 산길을 올라가서 기차역이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어. 이제 여기서부터는 기차를 타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거야. 이 철도는 1958년에 만들어진 산속을 통과하는 지하 철도인데, 당시에 100만 달러 넘게 투자한 사업이었고, 군사 통신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 건설한 곳라고 해. 이 높은 산 속을 뚫어서 철로를 만들었다는 것이 실제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더라. 


산속을 관통하면서 올라가는 지하 기차 터널을 상상할 수 있겠니?


작은 터널에 꼭 맞게 설계된 기차 안에 관광객 열댓 명이 붙어 앉아 있어. 기차 안은 어두워서 바로 옆에 앉은 아이들의 얼굴도 보이지 않네. 손을 꼭 잡고 아이들의 온기를 느껴봤어. 다들 긴장했는지 아무 말이 없고 숨소리만 들려.


중간에 한 번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이제는 39도에 가까운 경사를 따라 올라가는 산악 지하 철도를 경험하는 거야. 처음이라 그런지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어. 우리 일행이 탄 열차 칸에는 젊은 남자 두 명이 스키 장비를 갖추고 탔어. 최정상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올 건 가봐.




여기는 최. 정상이야. 아직은 눈이 다 녹지 않아서 펼쳐진 새하얀 산 등성이는 AI가 그려낸 것처럼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글로 담을 수도 사진으로도 다 담을 수가 없네.


선생님은 겹겹이 겨울 옷을 입고도 추워서 얼른 카페 안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노르웨이 사람들을 전망대 옥상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고, 보온병에 싸 온 커피를 마시며 거센 바람을 마주하고 있네. 정말 대단해. 몇몇 사람들은 이제 스키 장비를 갖추고 활강을 시작하려고 해. 슬로프도 따로 없는 산 등성이를 스키를 타고 내려 가면 어떤 기분 일까? 선생님 남편이 내년에는 스키를 챙겨 와서 직접 경험해 보겠다는데 같이 가자고 할까봐 미리 거절 의사를 표시했어. 샘의 스키 실력 너희도 알잖아.


산정상에 카페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어. 여기는 '비현실적인 정상이구나.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구나.' 그리고 생각했어. 

진짜 산 정상 말고, 
인생에도 정상이라는 곳이 있을까?



얘들아. 너희는 '인생의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사실 선생님은 '인생의 정상'에 서 보겠다는 큰 포부를 가진 적이 없어. 그래서 너희에게 그런 걸 조언하기는 힘들 것 같아. 하지만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감, 애착은 강하게 가지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 


지금 선생님은 학교 밖에서 먼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이잖아. 지금까지 했던 거 보다 더 넓게 배우고 깊게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어. 정말 내가 하고 싶고, 잘하는 것을 찾으려고 해. 이건 인생의 정상에 올라가고 싶어서가 아니야.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야. 너희도 행복하게 살면 좋겠어. 인생의 정상이 있다고 해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돈과 명예를 다 가지더라도, 내가 행복한 일을 하며 살지 않는 한 그곳은 진정한 정상이 아닐 거야. 


편지를 쓰다 보니, 별 말을 다하는 것 같네. 너희의 지난 일주일을 칭찬해. 어찌 되었든 잘 살아냈어. 또 일주일, 잘 살아 보자.   


- 노르웨이에서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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