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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May 14. 2023

얘들아, 세상은 말이야.

얘들아, 안녕?

주말 잘 보내고 있어?


너희들 지난주에 곱창 파티 했더라. 카톡에 보내 준 단체 사진을 보고 이미지를 클릭한 후에 이미지 저장을 눌렀어. 이제 선생님의 핸드폰 갤러리에 영구 저장되었다.


저장 각!

파스타보다는 곱창이지. 노르웨이엔 없어.


오늘 아침에 우연히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탄 여배우의 수상 소감을 평가한 영상을 보았어. 배우의 수상 소감을 보기 전이었기 때문에 그저 수상 소감을 어떤 면에서 잘했는지가 궁금했지.

여배우의 수상 소감은 너무 멋졌어. 울먹 거리면서도 벅찬 감정을 추스르고 논리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말들을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 진심이 느껴졌고 그 말들이 결코 거짓일리가 없다는 배우의 인성에 대한 믿음까지 생기더라. 그런데 그런 장면을 보고 어느 평론가가 뾰족한 말들로 상처를 내려고 했다니, 참 속상했어.

선생님이 본 유튜브 영상의 썸네일은

스피치의 진짜 품격
말을 잘하고 싶다면 꼭 보세요

이었어.


너희도 말을 잘하고 싶다, 대화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니?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은 선생님의 인생 과제 중에 하나야. 알고 있겠지만 선생님은 원래 말이 많은 편이 아니야.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가족들에게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아. 아마도 말에 대한 어려움과 두려움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


너희가 이렇게 되물을 수도 있을 거 같아.


"말에 대한 어려움과 두려움이 있다고요? 선생님인데요?"


그래. 말이란 건, 어렵고 두려운 인간의 능력인 거 같아. 하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능력이지.


선생님이 생각하는 ‘말’에는 두 가지가 있어. 첫 번째는 꼭 해야 하는 말이고,  두 번째는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야. 보통 선생님은 꼭 해야 하는 말만 하는 편인데, 요즘은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빼고 나머지에 대한 것은 말하기를 더 즐겨보려고 노력 중이야.


글도 써야 느는 것처럼 말도 해봐야 느는 거니까.

우리 반에도 교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 있었지? 특히 선생님의 말이라는 건 정말 중요해서 때로는 말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어.


선생님 주변 사람들도 학교 다닐 때 어떤 선생님의 말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거나, 좌절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아. 그러니 교사가 될 너희들의 입은 단속을 좀 더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단다.


입조심

꼭 교사가 아니어도 누군가를 가르쳐야 하는 직업이거나 사람을 대하는 모든 일들에는 말 또는 대화를 잘하는 기술이 필요해. 그런데 우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그걸 제대로 배우지 않잖아. 선생님도 주변에 달변가에 가까운 선생님들이나 유머와 지식을 겸비한 강사 선생님들을 보면 선생님은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해. 그분들을 닮고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달변가가 되기보다는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거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노르웨이 학교 마다 있는 친구 의자.


작년에 새 학기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한 친구를 불렀어. 가명을 인성이라고 해볼까?


인성이를 부른 이유는 핸드폰 압수와 관련된 일 때문이었는데, 학기 초부터 담임이 불러서 복도에서 뭔가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아마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거 같아. 인성의 표정과 말투에서 분명한 방어 태세를 느꼈고, 딱딱하고 거친 말은 인성이가 들고 있는 방패를 절대 관통하지 못할 거라는 걸 직감했어.


 ‘진심이나 마음이 통하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대화를 속개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웃으면서 대화가 잘 끝난 거 같아. 선생님도 인성이에게 잘못된 부분을 분명하게 인지시켜 주는 것으로 대화의 목적을 달성했고 말이야. 우리의 대화는 전혀 뾰족해지지 않고 뽀송하게 끝이 났어. 그 후로도 선생님과 인성이의 대화는 둥근 말들이 또로록 굴러갔다 굴러왔단다.


인성이와의 1대 1 대화를 시작으로 선생님은 다짐했어.


‘앞으로 일 년 동안 거친 말을 절대 하지 않고 뽀송뽀송하고 달달한 생크림 같은 말로 너희들이 쳐놓은 방어막을 다 관통해 버리겠다!‘


잔소리나 큰 소리를 내지 않고 한 해를 보내겠다는 결심을 지키는 것이 물론 쉽지 않았어. 하지만 선생님은 잘 해냈다고 생각해. 선생님이 뾰족하거나 거친 말을 할 필요가 없게 해 준 건 너희들 덕분이야. 너희들이 보여주었던 예의바름과 갖은 배려, 작고 많은 선행들 덕분에 우리는 잘 해낼 수 있었어. 이 글을 빌어 고마움을 전할게.


얘들아, 세상은 말이야.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일들 투성이야.

나는 뽀송한 말을 하고 싶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고 탓하는 친구들이 분명 있을 거야. 가족들도, 친구들도, 나중에 너희가 사회에서 만날 수많은 사람들이 '굳이 핵심도 아니고, 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 해소용 말'들로 너희를 힘들게 할 수도 있어.


그런 사람이, 그런 상황이 적지 않을 거야. 도처에서 불쑥불쑥 나타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를 비난하고 상처 주는 말로 상대를 아프게 하고, 내 마음을 속상하게 만들지 말자.


세상은 말이야.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일들 투성이야.


그럴 때는 '나만 참을 수 없지' 하면서 들이대지 말고, '너희는 제대로 말을 할 줄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이해하자. 


그럼 너희 주변이 조금씩 뽀송뽀송해질 거야. 혹은 뽀송뽀송한 사람들만 남게 될 거야. 사실 선생님은 그렇게 선생님의 남편. 경상도 토박이, 남중, 남고, 공대, 군대, 직장 등 남초의 길을 걷는 한 남자를 뽀송뽀송하게 만들어 가고 있어. 너희도 지금 그 길 선상 어딘 가에 있지? 남고 고3들 응원한다!!


오늘도 진짜 수고했어.


- 노르웨이에서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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