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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거림을 취미로 하려고

by 김노하 Norway

얘들아, 안녕?!


시험 끝난 걸 축하해!!! 작년에 우리 반이었던 아이들 몇몇이 모여서 밥 먹기로 했다더니, 아직 소식이 없네. 오늘은 당당하게 놀 수 있으니까, 다들 자유를 만끽하고 있겠지?


20191214_141731.jpg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해!


오늘은 금요일!!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났지만 아이들 아침밥 챙겨주고, 도시락도 싸서 학교를 무사히 보냈어. (남편은? 남편은 알아서 출근을 잘해. 다 컸으니까. ㅋ) 노르웨이에는 학교 급식이 없어서 아침마다 도시락을 두 개 싸야 하는데, 다행히 빵에 과일이나 채소 몇 조각이면 되니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


선생님의 라떼는 물론 학교 급식이 있긴 했지만, 몇 해는 도시락을 싸서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나. 점심시간만큼은 책상 위에 쌓여있던 책을 바닥에 다 내려놓고, 켜켜이 쌓여 있던 3단 도시락을 해체해서 공격적으로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나네.

그거 아니? 점심 도시락이 있다는 건 배고플 때 언제든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너무 배가 고팠던 여중생 중 몇몇은 항상 3교시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꺼내서 먹었어. 4교시 샘들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부터 음식 냄새가 난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으셨어.


아마 선생님도 진짜 배가 고프셨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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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은 아침 운동을 하고 이제 컴퓨터 앞에 앉았어. 치즈를 얹은 빵 한 조각하고 과일이나 야채 조금, 샘이 너무 사랑하는 달걀 프라이 하나. 그리고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이 선생님의 아침 식사야. 이 아침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 오늘도 유튜브를 보면서 열심히 운동을 했어.

선생님의 '생애 첫 다이어트' 이야기를 했었나?



언제? 2년 전

어디서? 노르웨이 집에서

누구와? 홀로

무엇을? 생애 첫 다이어트를 시작하다.

어떻게?

아침 공복에 한다.

유튜브 홈트 영상을 열심히 따라 한다. (유산소와 근력 운동 1시간 이상)

꾸준히 한다.

"식단은 필수로 해야 돼!" (트레이너급 몸을 가진 샘 동생이 툭 던진 한 문장)



단짠 & 매운 음식 마니아이자 밥심으로 평생을 살았던 선생님이 먹는 걸 줄이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 운동을 시작했던 초반에는 매일 체중을 쟀는데, '빠졌나? 빠진 건가? 왜 안 빠지지?' 매일 체중계 숫자를 보니까 조바심이 나더라. 그래서 그냥 몸무게를 재지 않기로 했어.


그냥 하자. 살은 안 빠져도 건강은 해지겠지 뭐.


5개월 차가 되니까 그때서야 체중이 쭉쭉 빠지더라. 아마 매일 CHECK, CHECK 했다면 힘들어서 못했을 거야. 옆에서 간섭하거나 확인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또 못했을 거 같아. 그냥 했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누가 확인하지도 않았지만 했어. 그냥 하고 싶어서 한 거니까.


결과가 어찌 되었든 노력했고, 스스로 만족했어.


20200709_132045 (1).jpg 빈둥거릴 수밖에 없는 노르웨이 바다와 하늘


너희도 시험 결과가 어찌 되었든 노력했다면 최선을 다 했다면 스스로를 칭찬해 주렴. 시험 치느라 수고했어. 이번 주말에는 오롯한 빈둥거림을 권할게.


빈둥거림
: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자꾸 게으름을 피우며 놀기만 하다.


핸드폰도 내려놓고, 음악도 듣지 말고 진짜 세상 최강 나무늘보처럼 '나'하고만 빈둥거려 봐.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게 좋아. 선생님은 노르웨이 집 거실에서 혼자 음악이나 강의를 틀어두고 지내는데, 앞으로는 오롯한 빈둥거림을 취미로 삼아 보려고.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온전한 나와 마주해 보는 것. 나와 놀아보는 것. 나에게 말을 걸어 보는 것. 하루 딱 10분만 진짜 게으르게 놀아보려고 해. 빈둥거려 볼 거야.


공부에서 당당히 자유로운 주말을 보내렴.


- 봄이 오려다 말고 추운 노르웨이에서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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