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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Apr 23. 2023

북유럽에 해가 뜬 다는 것은

얘들아, 안녕?!


일주일 잘 지냈어? 새 학기 첫 시험이 며칠 남지 않았네!!

학기에 두 번의 시험으로 - 물론 수행평가가 있긴 하지만- 평생 남을 고등학교 성적이 결정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어. 선생님도 고등학교 때는 시험 기간만 되면 작은 것들에 예민했던 것 같아. 


일단 암기 과목을 공부한 후에는 음악을 절대 듣지 않았고 말도 많이 하지 않았어. 음악과 수다에 심취해 버리면 힘들게 외운 것들이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려웠거든. 선생님 친구들 중에는 시험 기간에 손톱을 깎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고, 시험을 치기 전에 방석 밑에 머리카락을 뽑아서 넣어두는 아이들도 있었어. 


너희도 시험을 잘 치기 위해서 이것은 꼭 한다, 안 한다. 그런 것들이 있니?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란 말이 있지. 선생님이 된 이후에는 '지긋지긋한 시험을 치지 않아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시험은 정말 끝이 없더라.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시험이 있어. 


바로 노르웨이 운전면허 실기 시험이야. 노르웨이에서는 한국 운전면허증이 있어도 실기 시험을 다시 쳐야 하고 1년 안에 실기 시험을 치지 않으면 필기부터 다시 공부해서 정식으로 노르웨이 운전 면허증을 따야 해. 문제는 한국 면허를 인정해 주는 노르웨이 운전 실기 시험은 노르웨이에 입국한 후 1년 안에 딱 1번만 칠 수 있다는 거야.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하면 필기부터 다시 시험을 쳐야 해. 


선생님은 생각했지.  

'이건 뭐 수능보다 더하네!!! 수능은 잘 못 치면 재수해도 되는데.' 


운전 실기 시험에 떨어진 후를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세 가지 있었어. 첫째, 당시 선생님은 만삭의 임산부였다는 것. 출산을 하고 난 후에는 육아를 해야 하니까 시간이 없을 것 같았어. 둘째, 영어나 노르웨이어로 필기시험을 준비하고 실기 시험까지 제대로 다 해낼 용기가 없었어. 유럽에서의 생존 영어는 한국 학교에서 배운 영어랑은 정말 다르더라. (영어 회화는 필수야.) 셋째,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 노르웨이에서 운전 실기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먼저 실기 학원에서 꼭 이수해야 하는 과정들이 있는데 그 비용이 최소 이백만 원 넘게 들어. 정말 비싸지 않니?


두근두근!!
인생의 단 한 번만 기회가 주어지는 시험!

"한국 운전 면허증 교환을 위한 노르웨이 운전 실기 시험"

시험 당일은 평일 낮이라 차가 적게 다녔고, 다행히 날씨도 좋았어. 하지만 만삭의 임산부라서 배가 핸들에 닿을 지경이었고, 시험관이 냅다 영어로 질문을 하고, 또 이런저런 말을 시키고, 알려주는 길로만 운전을 해야 해서 정말 혼돈의 40분이었어. 

결과는? 
하하하아, 합격!! 


시험관을 옆에 태우고 고속도로와 도심 운전을 하고 다시 시험장 건물로 들어와서 운전에 대한 코멘트를 듣는데, '합격'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몰라. 중간중간 미흡한 점이 있었지만 법을 어기는 실수가 없었으니 합격이라는 말이 정말 너무 기뻤어. 나에게는 실기 기회가 한 번 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지금 이 합격은 정말 나에게 의미가 크다고 시험관에게 고맙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어. 


시험장을 나서면서 스스로를 칭찬했고, 무한한 안도감을 품은 행복함이 맑은 하늘에 솟아올랐어.


그런데 그 순간 뭔가 허전하더라고.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어."라는 식의 반응 말고,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정말 대단해!", "정말 축하해!!"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일일이 다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고 축하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해주는 사람은 옆에 없었어. 


외로움을 껴입은 행복한 순간이었어.    


내가 했던 노력을 알아주고, 그에 상응하는 행복과 성공을 가장 축하해 줄 사람은 결국은 '나 자신'이야. 가장 힘든 순간도 가장 행복한 순간도 가장 진심 가득하게 돌봐 줄 사람은 너희 자신이야. 그러니 너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가 '너' 자신이라는 걸 잊지 말길 바라. 


노르웨이에도 봄이 온 거 같아. 선생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아직도 길가에 쌓인 눈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반팔을 입기 시작했어. (물론 선생님은 여전히 긴팔!) 북유럽에서는 해가 뜨면 사람들이 행복해져. 해가 뜨는 맑은 날씨는 북유럽 사람들에게 행복함을 주는 특별한 이유가 되기도 해. 한국에서는 좀 덜 했는데 노르웨이에 오자마자 선생님도 미어캣처럼 해가 들어오는 위치로 자리를 바꿔가면 앉아 있어.  


자연이 주는 따스함을 즐기러 선생님도 이제 나가보려고 해. 이번 한 주도 고생했어!!! 시험 잘 치고 홀가분하게 다음 편지를 기다려주렴! 


Lykke til!! (리케 틸!, 행운을 빌어!!)


- 노르웨이에서 선생님이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시험 문제 마감에 허걱허걱 되는 시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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