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수영장 가서 와플 구워야 해. 기억하고 있지?”
“벌써 우리 차례야?”
“응, 오전 10시 시작이야. 와플 굽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일찍 가야 해. 그리고 다음 주 토요일엔 스케이트 클럽 두그나드도 있어.”
“이번엔 뭐 하면 돼?”
“아이스 링크장 주변 청소하기. 참가자 수만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대.”
두그나드?
노르웨이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두그나드’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주말에 뭐 해?”라고 물으면 “나 두그나드 하러 갈 거야.”라고 대답한다.
노르웨이 말로 '두그나드(Dugnad)'는 소속된 공동체를 위한 '봉사 활동'을 말한다. 마을에서는 골목 청소, 유치원과 학교에서는 환경 정리, 스포츠 클럽에서는 기금 마련 행사 등 공동체마다 봉사 활동도 다양하다. 한국 농촌에서 농사일을 공통으로 하기 위해 마을ㆍ부락 단위로 둔 공동 노동 조직, ‘두레’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두그나드에 참석해야 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돈을 조금씩 모으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왜 굳이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고, 노르웨이어도 잘 못하는데 이미 친분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서 친목 활동을 해야 하는 것도 불편했다. 슬쩍 핑계를 대고 빠진 적도 있었지만 불참하는 것은 결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 살고 있는 동네, 아이들 학교, 운동 클럽에서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노르웨이에 산 지 10년이 넘은 지금은 두그나드의 계절이 되면 자연스레 마음의 준비를 한다. 올해는 새 학기 시작 전에 학부모들이 모여 교실 벽을 새로 칠했다. 덕분에 아이들이 깨끗한 교실에서 수업을 시작했다고 선생님에게 감사 메일을 받았다. 동네에서도 두그나드를 했는데 놀이터 담장을 고치고 놀이 기구와 모래 놀이터를 정비했다. 기울어진 담장에 아이들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필자의 두 딸이 방과후에 배우고 있는 수영과 스케이트 클럽에서도 주기적으로 두그나드를 한다. 클럽에 일정 금액의 교육비를 내기는 하지만 지자체와 기업의 지원 그리고 학부모들의 두그나드가 클럽 운영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사교육은 교육비만 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닌 거다.
최근 참석한 학부모 모임에서 “올해 지원금이 줄어 두그나드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공지가 있었다. 많은 클럽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교육비 자체는 올리지 않고 금액을 유지하는 중이다. 교육비를 올리면 경제적인 이유로 운동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도 스케이트 클럽에서 기금 모금 행사를 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이 찾아와 “나도 옛날에 이 클럽에서 스케이트를 탔었지.”라며 아이들을 응원해 주시고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다. 돈으로만 해결하는 방법을 택했다면 마을 사람들과 이런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 보면 두그나드 덕분에 아이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책임감을 배울 수 있었고, 부모로서도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 줄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인인 우리 가족이 노르웨이 사람들의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두그나드가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면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두그나드는 필자가 노르웨이에서 경험한 가장 특별한 ‘사회정서교육 활동’이며 ‘살아 있는 교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