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수학여행 관련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친구들과 나눈 대화의 끝은 늘 수학여행 무용론이었다.
“수학여행을 왜 가는지 모르겠어. 차에서 내리면 사진 찍고, 또 이동하고 그것밖에 기억이 안 나.”
“나도 버스에서 계속 잤던 것 같아.”
노르웨이 아이들의 수학여행은 어떨까?
부모로서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딸아이의 노르웨이 수학여행은 세 가지의 큰 특이점이 있었다. 먼저 여행의 목적과 교육 철학부터가 달랐다. 한국어로 '수학여행(修學旅行)'은 말 그대로 '배움을 닦는 여행'이라는 뜻이다. 학교 교육과정의 연장선상에서 지식을 체험하고 배우는 여행이라는 뜻이다. 반면 노르웨이의 ‘라이르스콜레(Leirskole)'는 '캠프 학교', ‘야영 학교’라는 뜻이다. 좀 더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자연 체험 학교’다. 사용하는 단어에서 교육 활동 취지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 라이르스콜레(Leirskole) 대신 수학여행이라는 용어를 계속 쓰고자 한다.)
주변 지인들의 아이들이 다니는 노르웨이 초등학교에서는 직접 카약을 타고 섬까지 노를 저어 간 다음 무인도 캠핑을 하기도 하고, 어떤 학교는 산속 호숫가로 가서 텐트를 치고, 삽으로 땅을 파서 간이 화장실도 만들어 지냈다고 들었다. 또 어떤 학교는 목적지까지 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서 캠핑을 하기도 했다.
딸아이는 눈이 다 녹지 않은 이른 봄에 3박 4일 일정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장소는 학교에서 두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이었다. 숙소 홈페이지를 보니 강가를 따라 아담한 나무 별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이들은 조를 나눠 별장 한 채씩을 배정받아 생활했다. 쾌적해 보이는 시설에 안심이 되었지만, 동시에 노르웨이의 야생을 더 깊이 체험하지 못한 점이 아쉽기도 했다. 대신 노르웨이 학교의 수학여행 목적에 맞게 잠자는 시간 외에는 실내에 머무를 수 없다는 규칙이 있었다. 아이들은 아침에 숙소에서 나와 하루 종일 바깥 활동을 하다가 저녁을 먹고서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두 번째 특이했던 점은 여행 중에 어떤 활동을 하는지 일정표가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단체 여행이라면 언제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몇 시에 식사를 하고 잠을 언제 자는지가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노르웨이 학교에서는 그런 정보를 전혀 주지 않았다. 숙소 주변과 근처 산에서 머무는 여행이기 때문에 굳이 여행 일정표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3박 4일간 자유 시간이 전체의 80%라면, 준비된 프로그램은 20% 정도에 불과했다. 딸아이 말로는 다 같이 산속으로 스키를 타러 간 날이 하루 있었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이 정해진 장소에서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활쏘기와 실내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거나 암벽 타기를 하는 것이 준비된 프로그램이었다. 심심할 것을 대비한 아이들이 보드게임이나 카드 등을 챙겨 왔다고도 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소감을 물었을 때 딸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이 금방 끝나서 아쉬웠는데 수학여행 가서는 하루 종일 같이 놀 수 있어 좋았어.” 이 말을 들으니, 친구들과 자유롭게 충분히 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이것도 교육의 일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특이한 점은 수학여행 기념사진이나 활동사진이 없었다는 점이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며칠 지난 후 딸아이는 가방에서 구겨진 A4 종이를 보여줬다. 수학여행 참여 인증서 같은 거였다. 거기에는 산속에서 점심을 먹을 때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사진이 너무 흐려서 딸아이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다. 제대로 된 단체 사진도, 활동사진도 한 장 보내주지 않는 수학여행이라니.
딸아이가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궁금한 것이 많았던 나는 글도 쓸 겸 해서 정식으로 딸아이에게 인터뷰를 청했었다.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졸랐지만 내가 경험했던 수학여행과는 너무나 달랐기에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엄마는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스키를 못 타는 아이들은 어떻게 갔어? 다른 길로 갔다고? 모닥불을 너희가 피웠다고?”
끝없는 질문에 아이는 펜을 들고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그림으로 그려줄게.”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는 딸을 보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슬쩍 제안했다.
“우리 수학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책으로 만드는 건 어때? 한국 친구들이 궁금해할 거 같기도 하고. 책 만드는 건 엄마가 도와줄 수 있어.”
“그래? 좋아! 그럼 나도 그림책 작가가 되는 거네!”
얼떨결에 딸은 나와 같이 노르웨이 수학여행기를 주제로 한 그림책을 만들기로 했고 열심히 작업을 하는 중이다.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수학여행이지만, 딸아이가 직접 그림으로 책이 만들어질 거로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더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노르웨이 수학여행을 한 줄로 요약해 보면 “가족/미디어와 거리두기. 친구/자연과 더 재미있게 놀기”가 꼭 맞을 것 같다.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슬그머니 잊어가고 있었던 사실이다. 아이들에게는 노는 것이 곧 배움이다. 11살이지만 여전히 노는 것이 좋은 어린아이다. 잘 놀고 왔으니 만족이다. 그리고 그동안 ‘수학여행이 과연 필요할까?’라는 의문을 가졌던 내게, 딸아이는 웃으며 답도 알려 주었다.
“또 수학여행 가고 싶어! 친구들하고 놀고 싶어!”
이런 수학여행이라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