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구들이 질문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알아? 핸드폰을 들고 갈 수 있는지, 과자를 들고 갈 수 있는지, 수건은 들고 가야 하는지, 누구랑 같이 잠을 자는지. 선생님이 완전 애들 질문에 깔려 버렸어!”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가게 된 큰 딸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적어도 한 달 동안, 밥을 먹을 때마다 “너무 기대 돼!”를 연발했다.
수학여행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가 진행되면서 학부모 모임도 다녀왔다. 학부모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들은 나중에 공지될 예정이었지만 “엄마, 저녁에 모임 갈 거지?”를 몇 번이나 물어본 딸의 조바심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학부모 회의에는 얼굴 도장이라도 찍어야 한다며 등 떠미는 남편의 잔소리도 어김없이 작동했다.
"에구, 알았다 알았어~~"
신경을 곤두 세워 들어도 학부모 회의의 내용을 백 프로 이해할 수는 없는데, 그래도 일단 가서 핵심 내용 정도는 파악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오후 6시, 저녁 대신 바나나 하나와 요거트를 들고 어그적 어그적 회의에 참석했다. 역시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회의에 참석했고 열띤 토의의 장이 펼쳐졌다. 일단 아이들은 핸드폰을 소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학교의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부모들은 기본적으로 “핸드폰 소지 금지”를 환영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연락을 하고 싶을 경우 선생님 핸드폰을 통해서 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냥 선생님들을 믿으면 된다는 말에 부모들의 불안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각자 먹을 간식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용돈은 얼마로 제한할 것인지를 의논했다. 몇몇 학부모들은 다른 의견이 있었지만 학부모 대표가 스키를 타러 갔을 때 먹을 초콜릿과 마지막 날 파티 때 먹을 단체 간식(팝콘 등) 정도만 사서 버스에 실어주기로 했다. 추가적으로 간식을 사 먹을 개인 용돈은 150kr로 정했다. 한국 돈으로는 2만 원이 조금 넘는데 3박 4일 동안 저녁 시간 2번 키오스크(매점)를 사용을 허락하기로 했다. 다만 현금으로 통일할지, 체크카드를 허용할지는 끝내 결정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현금으로 가지고 가거나 체크카드에 딱 150kr만큼만 현금을 넣어두고 가지고 오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날짜가 다가오면서 나도 슬슬 걱정이 시작됐다. 노르웨이 수학여행은 ‘관광 컨셉’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단체 생활을 하는 것에 더 의의가 있었다. 산속 캠핑장에서 진짜 자연주의 캠핑을 하는 학교도 있지만 딸아이 학교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히떼(별장) 시설을 이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시설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면서 노르웨이 아이들의 수학여행을 상상했다.
‘여기서 뭘 하며 지낸다는 거지??’
‘밖에서 하루 종일 지낸다고? 그럼 준비물은 뭘 챙겨야 하는 거지? 3월이라 아직 날씨가 추운데. 어떤 옷을 얼마큼 챙겨야 할까. 스키 탈 때 옷도 챙겨야 하고, 비가 오면 어쩌지. 비옷도 챙겨야 하나?‘
드디어 학교 공지앱에 안내문이 올라왔다. 여행 가방은 딸이 스스로 챙길 수 있도록 했다. 수학여행 출발 5일 전, 창고에서 여행 가방 꺼내고 그 위에 준비물 리스트를 출력해서 놓아두었다. “시간 되면 슬슬 챙겨~~”
노르웨이 초등학교 Leirskole (수학여행) 안내문
(아래는 학교에서 보내준 안내문 3장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출발 및 도착
• 출발: 월, 오전 8시 40분까지 학교 운동장에 집합. 버스는 9시에 출발.
• 도착: 목 오전 11시 30분 00에서 출발,오후 2시경 학교 도착 예정.
직접 픽업이 어려운 경우, 다른 보호자와 상의할 것.
월요일 주의사항
• 넉넉한 양의 도시락(2개 가능) 숙소에서 첫 식사는 저녁 6시
• 물병 필수! (버스 내 음식 섭취 금지)
• 출발 전 든든한 아침 식사 필요
• 멀미약 필요한 경우, 출발 1시간 전 복용 권장
장비 관련
• 스키와 폴은 묶어서 이름 표시 필수.
• 도시락통, 물병, 옷, 신발 등 모든 개인 물품에 이름표 필수
버스 좌석 및 숙소
• 숙소와 룸 배정은 버스 안에서 공지.
• 버스 좌석은 고정, 선생님이 배정함.
취침 시간
• 21시까지 숙소 입실,
• 22시에 소등 및 취침.
용돈 및 간식
• 최대 150 크로네 허용. (가급적 카드 사용, 카드 없을 경우 현금으로 선생님께 전달)
• 간식, 사탕, 음료는 집에서 가져오지 않음. (학부모 대표가 모두에게 간식 제공 준비 완료)
• 모든 종류의 견과류 금지 (알레르기 때문)
비상 연락처 : 필요시 아래 선생님들께 문자로 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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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규칙
1. 방, 건물, 캠프장소는 항상 정리정돈.
2. 허가 없이 캠프장 벗어나지 않기.
3. 강에서 수영 금지.
4. 휴대폰 소지 금지 (특별한 경우 교사와 협의).
5. 게임기, 음악기기 등 전자기기 반입 금지.
6. 견과류, 향수 금지.
7. 사진은 반드시 촬영 대상자의 동의 필요.
인터넷 업로드는 보호자 동의 필수.
8. 타인의 숙소 방문 금지.
9.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숙소 내에서 조용히.
10. 흡연, 불, 알코올 금지. 화재 시에는 빈손으로 밖에서 반별 집합.
11. 규칙을 어겨 물건을 망가뜨릴 경우 배상 책임, 귀중품은 가져오지 않는 것이 좋음. 규칙 위반 시 부모 부담으로 귀가 조치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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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장비 준비물 체크리스트
옷과 신발
• 방수 점퍼 / 겨울 바지 / 스키 바지
• 울 스웨터 2벌, 얇은 옷
• 속옷 및 내복 (울 소재 추천)
• 잠옷
/ 얇은 양말 4~5켤레 / 두꺼운 양말 2켤레
• 따뜻한 장갑, 모자, 목도리
• 실내 슬리퍼 (선택사항) / 겨울 신발
※ 모든 옷에는 이름표 필수!
※ 침구 및 수건은 숙소에서 제공됩니다.
기타 준비물
• 트레킹용 배낭
• 도시락통, 컵 달린 보온병, 물병
• 세면도구(칫솔, 치약, 치실)
• 손목시계
• 빨래 봉투
• 야외용 방석
• 선크림, 헤드램프, 선글라스 필요시 준비
남편과 나는 도시락과 스키를 준비해 주기로 하고 나머지는 첫째가 알아서 짐을 쌌다. 물건마다 이름표도 붙였다. 팬티나 양말에도 붙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팬티나 양말에는 이름표를 붙일 필요가 없다 하셨다며 괜찮다고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께 얼마나 많은 질문을 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수학여행 첫날 저녁. 남편은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 보라고 했지만 나는 일이 있으면 연락이 올 테고, 학부모 페이스북에 사진이라도 한 장 올라오지 않을까 하며 기다렸다. 모든 부모가 궁금하다는 이유로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하면 선생님들이 얼마나 성가시겠냐는 나의 의견에 남편은 꼭 선생님처럼 그렇게 말해야 하냐며 핀잔을 주었다.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전화가 왔다. 저녁도 맛있었고, 잘 놀았는데 “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짠 함이 밀려왔다. 다 큰 줄 알았다가도 아직 여린 열한 살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다음날은 웃으며 전화가 왔고, 그 다음 날은 아예 전화도 안 왔다. 파티하느라 너무 즐거웠다고 했다.
휴대폰을 두고 떠나기로 한 결정, 옷에 이름표를 붙이며 스스로 준비물을 챙기는 것, 간식을 공평하게 나누자는 계획 등. 수학여행 준비를 하면서 학부모와 교사들은 작은 것까지 함께 의논하는 과정을 거쳤다. 어른들의 불안때문에 아이들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짓지 않았고, 아이들이 혼자서 책임을 지고 해낼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결정된 것이 많았다. 물론 아이들도 수학 여행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선생님과 부모들에게 전하면서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며칠간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보다 실제 삶에서 정말 필요한 것들을 익힐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