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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원 Mar 05. 2017

사랑이 늦어서 미안해

사랑이 늦어서...

사랑도 미완성, 이별도 미완성, 영원히 완성될 수 없는 미완성, 그리고 사무치게 그리운 서툴던 시간이여.


“오빠 보고 싶은데 만나면 안 돼?”

“오늘은 좀…….”

내가 그녀를 만나러 가지 않은 이유는 다른 여자가 생겼다거나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이 줄어서가 아니었다.

처음 시작처럼 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좋아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축구를 차고 싶은 마음에 피곤하다고 거짓말을 했다.

12월 31일에는 프라이드 FC를 너무도 보고 싶은 마음에 또 아프다는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UFC 가 대세지만 그 시절에는 프라이드였다. 프라이드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해서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그 날 종일 아무 곳도 갈 수가 없었다.  

나는 화가 나면 있는 그대로 화를 분출했다. 다른 곳에서는 화를 참지만 그녀 앞에서만은 예외였다.

왜 그랬냐고?

그건 아마도 나란 놈이 많이 부족한 인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녀는 늘 내게 져주는 사람이었기에.

연인 사이에서 한쪽이 지는 것은 성질이 없거나 너무도 착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그만큼 더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조그만 그녀에게 불같이 성질을 내고 거친 표현도 하곤 했다. 부끄럽다.

그 시간이 지나면 별일도 아닌 것에 싸우고 화를 낸 것이 후회스럽지만 우리는 결국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돌이켜 보면 그녀가 나 때문에 거리에서 울며 서 있었던 수많은 모습이 떠오른다.

그 모습의 쓸쓸함이란…….

낯선 거리를 걷다가 붉은색 벽돌집을 보고 문득 12 년 전 유럽 어느 거리에서 그녀가 목 놓아 울었던 장면이 되살아났다.

이제 그녀는 그 모습 속에 있지 않을 테지만 나의 가슴속에는 그 순간이 남아 재생된다.

그녀의 우울했던 표정,

울어서 퉁퉁 부었던 그녀의 눈꺼풀,

내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던 모습,

내 소맷자락을 애처롭게 붙잡고 있던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 그리고 흔들리는 갈색 눈동자.

모든 것은 나란 사람 때문이고 그녀를 불안하게 했던 우리 싸움의 원인은 지금으로선, 심지어 그 당시 싸우고 난 후에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별 거 아닌 부스러기들.  


우리가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싸움들의 원인은 늘 명확하지 않은 잔상만 남긴 채 사라졌다.


전화로 치열하게 싸운 어느 날 나는 나의 최후 무기를 또다시 꺼냈다.

"헤어져!"

치열한 싸움에서 본능적으로 이기고 싶었고 늘 그렇듯 나는 마지막 핵폭탄을 투하했다.

그녀는 오지 않는 나를 노숙자가 득시글거리는 영등포역에서 밤새 기다렸다.


얼마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화해를 했고 그런 일들이 웃음거리처럼 회자되곤 했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연인 사이에서 영원히 잊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아픔을 주었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로 살아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가 웃으며 귀여운 말투로 “노숙자 때문에 무서웠단 말이야 바보야.”라고 한다해도.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나는 늘 승자였고 승자일 거라 믿었지만 종료 10초를 남겨두고 결정 골을 먹은 사람처럼 철저히 버림받았다.

마치 쌓였던 마음을 털어내듯.


이별의 아픔은 거짓말처럼 내게 처음으로 찾아왔고 나는 고스란히 아픔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때늦은 일이라 해도 어찌하겠나 그것이 나인 것을.

그 시절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생각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녀를 만났고 헤어지기 전까지 우리의 감정을 그녀처럼 느끼지 못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울고 웃었던 시간의 감정들은 뒤늦게 찾아왔다.

모든 사람이 다 떠나고 없는 텅 빈 운동장에 들어온 마라토너처럼 말이다.

내가 느꼈어! 사랑이 무엇인 줄 이제야 알겠어!

자, 이제 보여줄게!

이렇게 소리쳤지만 이제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시절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너무도 까마득히 지나버린 순간일 뿐이었다.

내가 42.195km를  완주했는데 증명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나는 결승점에 너무 늦게 들어왔다.


나의 인생은 늘 늦음의 연속이다. 모든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공부도 인생도 꿈도 사랑도 모두 다 그렇다.

어떤 것도 그런 늦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모든 것에 ‘때’ 가 있다는 선조들의 말씀처럼 사랑에도 사람의 마음에도 유효기간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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