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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Dec 28. 2023

어둠을 걷는 길

정지아,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사람은 타인에게 무관심할 수 없어.
우린 모두 놀라운 존재야."


간밤에는 영화 <패터슨>과 <더 웨일> 두 편을 내리 보았다.


예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 가령,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의 얼굴. 그가 버스 승객들의 대화에 귀기울이다가 옅은 미소를 지을 때. 눈으로부터 미소가 살짝 번져오는 것. 그가 표정을 바꿀 때마다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놀람과 당혹과 상심을 표현하는 덤덤한 얼굴. 가장 크게 움직이는 건 그의 눈. 끊임없이 관찰하고 발견하고 주시하다 생각에 빠지는 눈.



더웨일은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거실 소파에 거대한 몸을 묻은 찰리(브렌든 프레이저)에게로 인물들이 장면마다 다가온다. 그는 두 번의 상실(자의에 의한 가족 상실과 타의에 의한 연인 상실)로 인해 분노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찰리가 "I need to know that I have done one thing right with my life!" 하고 울부짖을 때부터 어쩔 도리 없이 울면서 보았다. 마지막 '상승'의 장면에서 두 부녀는 벅찬 미소를 지어보이고, 나는 여전히 눈물을 멈출 수 없고.



자기혐오를 완성하기 위해 자기(몸)를 파괴하고, 자기를 파괴해야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를 브렌든 프레이저는 확신을 담아 보여준다. 다만 인물, 서사, 마무리 모두 지나치게 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편 그러했기에 심장을 후들겨 맞은 듯 싶기도.)


두 편 모두 배우의 힘이 강렬했다. 실은 다르덴의 책을 읽은 뒤라 그의 영화를 보려 했다. 지난번에도 s언니가 추천해준 영화를 보려 했다가 사이렌에 붙잡히고 말았는데... 에너지가 차오르니 마음의 즉흥성도 활개를 친다.


#2020김유정문학상수상작품집 #정지아 #우리는어디까지알까 


수상작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는 단편모음집 <자본주의의 적>에서 먼저 읽었다. 그때는 선생님 사투리 진짜 찰지네, 하며 가벼이 읽었는데 오늘은 간밤의 영화 탓인지 마음이 사정없이 가라앉았다. 다르덴 에세이의 몇몇 대목과 '더 웨일'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찰리를 실질적으로 돌봐온 간호사이자 죽은 애인의 여동생인 리즈가 마치 단편 속 모녀를 합친 인물처럼도 느껴졌다. 알콜중독자 택이가 사는 방식을 수긍할 수 없었던 화자 '나'와 택이의 삶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짝은어매, 나의 어머니.


"다 지가 자초한 거야. 그러게 병원을 왜 안 가? 바보야? 저 지경이면 독하게 마음먹고 술도 딱 끊어야지. 술 하나를 맘대로 못해? 그게 사람이야?
아야, 야멸차게 굴지 마라. 사는 거이 다 맘대로 된다이야? 니는 살아봉게 다 니 맘대로 되디야? 그랬으먼 니는 이혼을 왜 했냐? 촌구석으로는 왜 기어들어왔냐?
(...) 어머니는 그날 내가 흘린 눈물을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 우리는 지금껏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다. 제 몫의 고통은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방식이었다." 45-46
"누나." 택이가 뒤돌아서 나를 불렀다. 
"짝은어매헌티 쫌 전해주소. 짝은어매 땜시 이때꺼정 나가 살았네." 51


우리는 타인의 삶을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나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어, 그렇게 혼잣말하는 때가 늘고 있다. 패터슨처럼, 그저 입을 다물고, 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만이 최선인 듯 싶다.


실상 보여주는 그대로 본다고도 확신할 수 없는데 보이지 않는 장면들이 더 많을 누군가의 삶을 알겠다 할 수 있을까. 모르면서 이해를 말할 수 있나. 하물며 자기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에 대해서라면, 더욱.


"아가 뭔 죄여? 고로크롬 태어난 것을 워쩌라고..." "사는 거이 다 맘대로 된다디야?" 짝은어매처럼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찰리처럼 자신의 삶을 밑바닥까지 끌고 가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은 타인에게 무관심할 수 없어. 우린 모두 놀라운 존재야." 자신을 변호하지 않은 채 딸의 분노를 수용하고, 누군가에게는 '악의'로 해석되는 딸의 언행을 타인을 향한 선의와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믿으면서, 자신을 등진 딸에게 끝까지 외칠 수 있을까. "넌 완벽해. 넌 행복해질 거야. 넌 사람들을 아껴."


그렇다면 다르덴의 말처럼, 더는 보호막으로 도피함 없이 중독적인 자기 파괴를 멈추고, 세상 밖으로 나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일이, 그렇게 한 인간이 한 인간을 살리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죽음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누리는,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 어린 딸의 에세이, 꼬치전과 매운탕 같은 기쁨과 위무의 순간들...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인간의 일'이야말로 어둠을 걷는 길일지도.



https://brunch.co.kr/@outofisland/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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