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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일에 대하여

로베르 브레송,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

by islander
"네가 찾은 것이 네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유익하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놀라고 흥분해서."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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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3일의 독서 일기 중에서


J가 변영주 감독의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를 대출해달라 했다. 그 덕에 웬만해선 찾지 않을 680번대 서가에서 책 두 권을 더 집어 왔다. 이런 우연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영화에 대한, 영화를 위한 책. 한 권은 수록된 문장들이 시와 아포리즘처럼도 읽히고, 또 한 권은 철학서처럼 읽힌다.




로베르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


브레송의 영화 미학이 456개의 단상들 속에 간결한 언어로 응축되어 있다. 그가 남긴 유일한 저서이니만큼 그의 영화에서 영향받은 추종자들이 이 작은 책을 얼마나 거듭 읽었을지. 브레송이라는 감독과 그의 영화미학에 대한 희미한 인상만이라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 딱히 관심이 없음에도 이 책을 집어들고 마지막까지 읽게 한 건 마치 경구처럼 지니고 싶은 그의 문장들이었다. 분명 영화에 대해 말하는데도 삶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가령,


"하찮은(의미 없는) 영상들에 전념할 것." 20

"연출가 또는 감독. 누군가를 감독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감독하는 일이 중요하다." 13

"적은 것으로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은 것으로도 할 수 있다. 많은 것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은 것으로도 항상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8
"균형을 되찾기 위해 균형을 잃을 것." 39

"빠름과 소란의 전략에, 느림과 침묵의 전략을 대립시킬 것." 55

"새로운 관계들뿐만 아니라, 다시 연결하고 조립하는 새로운 방법[도 찾아야 한다]." 90

"가장 일상적인 단어도 제자리에 놓이면 갑자기 광채를 내기 시작한다. 네 영상들은 바로 이 광채로 빛나야 한다." 97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모든 것이 달라지기를." 119
"시선에 대하여
누가 한 말이지? "시선만으로도 정념이 일어나고, 살인이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난다."

"눈으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이 아니라 서로의 시선을 본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람의 눈 색깔을 잘못 기억하는 것일까?)" 21


(어... 이건 우리가 하얀 공막을 가져서 눈이 아닌 시선을, 눈짓과 손짓의 의미와 지향점을 따지는 호모사피엔스라서 그렇습니다... 이런 문과생의 보기 드문 이과적 모먼트는 이전 독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사정권을 아직 벗어나지 못한 탓;;)




두 번째 책은 오래 공들여 읽었던,


뤽 다르덴의 <인간의 일에 대하여>

"친애하는 모리스에게,

인간의 일에 대하여 최종 원고를 보냅니다. (...) 버림받아 홀로 남겨진 소년에게 삶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존재 자체가 파괴되는 폭력을 경험하고도 소년은 어떻게 똑같은 폭력의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는지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 이 "인간의 일"은 결국 "신의 일", 신의 탄생에 관한 일이기도 합니다. 신의 죽음으로 홀로 남겨진 우리 인간들, 유한한 존재들, 수천년 동안 이어졌던 신의 위로 없이 살아가려 노력하는 우리들의 일이기도 합니다. (...) 이 책을 통해 "작고 연약한 존재", 유년기의 존재에 다가갈 수 있었기를, 그 존재가 자신의 말을 할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글을, 이 책을 당신에게 맡깁니다.

뤽"

- 프롤로그 중에서. p9-11


프롤로그에 마음을 빼앗겨 빌려놓고는 일주일 만에 펼쳐들었다가 20여분만에 덮어버렸다. 며칠 뒤 이때를 놓치면 영영 읽지 않을 거라는 확신 속에서 일주일을 재연장하고는 각 잡고 읽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영화 <자전거 탄 소년> 속 두 인물을 생각하며 틈틈이 모아놓은 단상들이라지만, '영원과 시간', '탄생과 죽음', '두려움과 사랑', '어떻게/무엇이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가'에 관한 만만치 않은 철학에세이다. 하이데거를 비롯한 실존주의 중장비를 갖춘 이들에게는 파고들기 어렵지 않겠으나, 내 연약한 손에는 달랑 작은 삽 한자루(<살구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만이...


책은 두 가지 전제하에 읽어야 한다.


1) 신은 죽었다. (신의 죽음 이후 남겨진 인간들의 일이므로, 신은 피난처도 구원자도 될 수 없다.)


2) 인간에게는 존재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으려는 욕망이 있다. (비-시간/비-분리/절대적 균형 상태로 돌아가려는 근원적 욕망. 영원과 통합된 존재로서의 원초적 갈망. 드릴로의 <제로K> 속 몇몇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영원과 구원에 대한 약속 혹은 소망 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들은 죽음을 향한 근원적인 두려움과 자기/타자(세상) 파괴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그건 유년기 (혹은 그 이후에 만나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체험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서이며, 이는 자기 안에 파괴할 수 없는 것으로 깊이 자라잡게 된다. 따라서 구원은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타인에게서 주어지는 것. 마치 기적처럼.


그렇게 삶이 죽음을 향해 가더라도 존재는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육아서에 진심이었던 시절에 읽었다면 이 책을 육아책 코너에 꽂아두었을지 모르겠다. 현재 내가 몰두해 있는 '인간의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 분류가 달라질지도. 작년의 나라면 '죽음(과 두려움)'을, 지금의 나는 '삶(과 사랑에의 기쁨)'을 주제로 한 철학서로 분류할 것 같다.


https://brunch.co.kr/@outofisland/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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