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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Jan 23. 2023

철학이라기보다는 기분

사라 베이크웰,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



1. 돈 드릴로의 <제로K>를 읽던 중에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존재와 시간>에 뛰어들 엄두는 물론 나질 않았다. 한 철학용어집이 ‘하이데거’ 항목을 “실체의 두꺼운 껍질을 뚫기 위한 중장비”로 정의하고, 그 용례로 “너무 깊이 묻혀 있으니 아무래도 하이데거를 사용해야 할 것 같다”고 제시했다는데...

다행히 이 책을 발견.


"사람들은 흔히 실존주의는 철학이라기보다는 기분에 가깝다고들 한다. 그러므로 실존주의의 기원은 19세기의 고뇌하는 소설가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그 이전에 무한한 침묵의 공간을 공포로 느꼈던 파스칼에게로, 다시 그 이전에 영혼을 찾으려 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또 그 이전에는 하느님이 인간을 희롱하며 복종을 강요하는 놀이에 감히 의문을 제기했던 구약성서 전도서의 욥에게로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무언가 어떤 것에 불만이나 반감 혹은 소외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 누구에게서나 실존주의를 찾을 수 있다." 

                                                        - 사라 베이크웰,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의 첫


2. 일단 도입부터 문을 활짝 열어주니 들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3. 작가가 인용한, 철학자의 삶에 ‘거주하는 철학(아이리스 머독)’이라는 개념이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에 읽은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 탓인지 한 개인에게서 탄생한 사상 또한 일종의 유기체처럼 느껴진달까. 철학자의 개인적 삶으로 빚어낸 위대한 철학이라 할지라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주창자조차 그걸 장악하지 못한 듯 보였는데, 단지 그것이 지닌 사상적 무게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의 생명력 때문인 것 같았다. 빚어진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법도 없고,  다른 철학자들에게로 옮겨가 변이의 과정을 밟으며, 심지어 제각각 상반된 형태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키르케고르/니체에서 브렌타노, 후설과 하이데거 그리고 사르트르 로 이어지는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계보를 훑다보니) 바로 그 역동적인 변이의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자신의 심오한 사상을 나치의 철학적 기반으로 사용해버린 하이데거를 보면, 철학자가 “얼마나 자신의 삶에 철학을 거주시키는지” “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철학을 점유했다가 옮겨가며 어떻게 처신하는지” 엿볼 수 있다.


‘철학과 전기를 조합하는’ 이 책의 방식이 유용하게 여겨지는 지점.


3. 윌듀런트의 <철학이야기>는 철학입문서로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사상을 철학자 개인의 삶과 그가 놓여 있던 시대 속에서 면밀히 다룬다. (작가의 은근한 유머감각도 좋았다.) 이런 연유로 유유출판사의 <꿈의 해석을 읽다> 또한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이는 어쩌면 이야기를 좋아하는 취향, 혹은 모든 것을 개인적인 것으로 환원하려는 내 성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런 식의 접근이 철학에의 문턱을 확 낮춰주는 건 부인하기 어려울 듯. 더불어 당대 문화사조와 영향을 주고받은 지식집단까지 살피게 되니 이 자체로도 풍성한 독서.


https://brunch.co.kr/@outofisland/57


4. 무엇보다 이 책은 가독성이 좋다. 작가의 필력이 책의 두께가 주는 압박감을 능히 이겨낸다. 책태기였음에도 페이지가 훅훅 넘어갔다. 


5. 더할 나위 없는 (현상학/)실존주의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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