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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Apr 07. 2017

꿈의 해석을 읽다

우린 모두 잠재적인 정신병자


0. <꿈의 해석을 읽다>를 드디어 완독. 대표적인 중화권 인문학자라는 '양자오'가 지었고, '유유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어쩌다 보니 올 들어 유유출판사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게 됐는데, 작가들이 하나같이 목소리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들려준다. 프로이트를 해설한 이 책 또한 무겁지 않다. 부제가 '프로이트를 읽기 위한 첫걸음'인데, 그 첫걸음으로 완벽하다! 쉽고 재미있다. <꿈의 해석>보다 더 재미있을까 봐 염려될 만큼 재미있다...
  작가는 '프로이트'라는 인물과 그 인물이 놓인 '19세기 유럽'이라는 역사적으로 특별한 배경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다루고 있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적 배경지식이 확장되며 당대를 풍미한 예술사조와 철학까지 훑게되니, 이 자체만으로 풍성한 독서체험이라 할 만하다.
  책은 들고 다니기에 딱 좋은 사이즈이며, 뒷날개를 접어 책갈피로 이용하게 만든 센스 또한 마음에 든다.
  자 자, 입문서도 읽었으니, 이제 십수년 간 책장에 꽂아만 뒀던 문제의 <꿈의 해석>을 꺼내기만 하면 되는데....설마 버리진 않았겠지?!


1. 오늘 내가 낚인 기사는, 한 유명 배우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사칭하고 자신에게 성적 모멸감을 준 네티즌을 고소한 기사였다. 정신병자, 관심종자, 스토커라고 질타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는데 그 가운데 나는 그의 지인이 남긴 듯한 댓글을 주목했다. 그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이런 짓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호기심에 그의 블로그와 인스타까지 찾아봤다. 그는 자신을 킹메이커라고 믿고 있었고, 종국에는 대권을 잡으려는 야심찬 꿈을 꾸고 있었다.


2. 이상과 망상, 정상과 비정상, 꿈과 현실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요즘처럼 온갖 음모론과 피해망상이 널려 있는 시대에서는 이 경계가 매우 흐릿한 것 같다.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모든 사람은 잠재적인 정신병자다. 정신병자는 환자가 아닌 사람보다 심리 기제의 운용이 다소 극단적일 뿐이다. 인간의 정신 상태는 하나의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이쪽에는 정상인이 있고 저쪽에 정신병자가 있으며, 그 가운데 둘을 나누는 경계가 명확한 구조가 아니다. 이런 생각은 나중에 문학과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로이트) 이후의 모든 예술가는 자기 안에 내재된 정신질환을 자각했다.... 20세기 예술은 기본적으로 광기의 예술이자 정신분열적 예술이다.... 프로이트의 저작은 사람들을 의자에 눕히고 끊임없이 기억을 되돌려 자기 자신의 비참함과 내면의 어둠을 깨닫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어둠 속의 괴물을 새기거나 그리거나 언어로 묘사함으로써 제거하고자 노력했고, 이로 인해 20세기 현대 예술이 출현했다. (p188-189)"

 


3. 오래 전, 고등학생 때. 현관문 앞.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뭐, 사춘기였으니 모든 게 다 짜증스러웠겠지. 무엇보다 신앙적으로 꽤 억눌려 있었다. 멱살 잡힌 채 끌려가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나는 엄마에게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다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얘 왜 이러니,' 그런 뜨악한 표정이었다. 그때 나는 감정을 폭발하는 순간에도 엄마의 표정을 예민하게 살폈고 이성이 멀쩡하게 작동하는 걸 의식하곤 내심 한탄했다. 왜 나란 인간은 이런 순간에 정신줄을 놓지 못하지. 확 놔버리면 좋을 텐데. 아주 시원스럽게 내질러버린다면, 엄마가 황당하게만 나를 쳐다보고 있진 않을 텐데. 내 감정을 좀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를 텐데. 엄마는 잠시 나를 내려다보다가 집안으로 그냥 들어가 버렸다.


4.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프로이트의 입을 빌어 말하자면, 나는 정신줄을 놓을 만큼 억압받진 않았던 거다. 고작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버릴, 딱 그 정도 폭발할 만큼의 억압이었던 거다. 그저 전형적인 사춘기를 앓았을 뿐. 어쩌면 그 정도의 미약한 분출이라도 있었기에 다음날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무릎끓고 앉아 성경을 펼쳤는지도...   


무척 연약한 존재인 인간은 강한 억압을 필요로 하는 경험과 맞닥뜨리면 아주 쉽게 정신병의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미치는 것은 실연으로 인한 충격 때문이 아니라, 실연의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지나치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런 충격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미칠 위험에서는 도리어 멀어질 수 있다.(p168-169)


5. 틈틈이 경계를 넘어버린 사람들을 맞닥뜨리곤 한다. 길거리에서, 공공장소에서, 뉴스와 풍문을 통해서.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걸까, 나는 그게 언제나 궁금했지만 결코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저 너머의 일이니까. 비정상과 비현실의 세계에 내가 거주할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세계가 만인에게 열려 있다고, 저 너머가 아니라 바로 여기 도처에 입을 벌리고 있다고 느낀다. 수면 위로 3년만에 끌어올려진 세월호가, 그 처참하게 상처입고 돌이킬 수 없이 부식된 모습이, 이 세계와 우리 내면에 도사린 어둠의 은유 같다. 우리가 결국 '실패'했다면, 계속 '억압'당했다면, 끔찍하게 변형되고 뒤틀린 채 여전히 가라앉아 있었겠지. 1073일만에 심연 속에서 건져낸 건, 어쩌면 우리의 인간성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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