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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Apr 28. 2017

그녀는 여전히...

마크 스트랜드, <빈방의 빛>


       언젠가 나는 에드워드 호퍼의 <휴게실>(1927) 속 여자처럼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휴게실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 벤치에 앉아 있었고, 그녀처럼 말쑥하게 차려입은 게 아니라 되는 대로 주워 입고 나와 있었으며, 커피가 아니라 캔맥주를 그것도 비닐봉지 안에 담아만 둔 채 처량하게 앉아 있었다. 

      몇몇의 사람들이 오갔다.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눈앞에 심겨진 가로수와 때때로 밤바람에 흔들리던 우듬지, 그 너머로 펼쳐진 밤하늘을 번갈아 바라봤다. 많은 생각들이 내게 떠밀려 왔다가 빠져 나갔다. 굳이 적고 싶지 않은, 적을 필요도 없는 것들이었다. 감정의 찌꺼기가 지저분하게 껴 있던 탁하고 어두운 생각들. 밤은 더 깊어졌고 대기는 냉랭했다. 어느 순간 나는 몸을 일으켰고, 패배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마크 스트랜드는 <휴게실>이 마치 림보 – 여기서는 지옥과 천당 사이가 아니라 현실과 환영 사이 –의 공간이며, 그녀는 호퍼의 환영이라고 표현했다.  

      실재하지 않지만 실감하게 되는, 환영이라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매번 나는 그녀에게 언젠가 저런 표정으로 앉아 있었던 나를 투영시키곤 했으니까. 나는 오래 전 진작에 그곳을 벗어났다. 내 의지로. 그런데도 내가 여전히 거기 있는 것처럼 여겨지니까. 

      하지만, '환영'이라는 단어는 묘하게 반발심을 불러일으킨다. 감각을 부인하는 건 어쩐지 내 자신을 부인하는 것 같다. 나는 다시 그림을 바라본다. 이번에는 나를 지우고 본다.    

      그러자 작은 창을 통해 한 세계를, 그 세계에 머물고 있는 한 여자를, 홀로 커피잔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빠져 있는 그녀를, 어느 누구의 창조물도 환영도 아닌, 생생하게 존재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것 같다. 어쩌면 한번쯤, 종착지도 정착지도 아닌 어딘가에서, 그녀와 같은 표정으로 머물다 간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그녀를 생생하게 감각하는 이유는, 그런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순전히 응원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길, 장갑을 마저 끼고 일어서길, 문을 활짝 열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서 저 어둠을 헤쳐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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