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VER BEFORE SEEN WORLD
웨딩포토그래퍼로 일하는 한 평범한 영국여성이 딸을 낳았다. 아기는 굉장히 사랑스러웠지만 극도로 민감했다. 잠투정이 심했고 낯을 가렸다. 평소 모험과 도전을 즐기며 살던 여자는 그런 아이에 묶여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듯한 우울감에 휩싸이지만, 그저 한순간의 일이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아이는 모든 면에 발달이 더뎠지만 모두 저만의 속도가 있겠거니 했고 아이의 예민한 성정도 그저 타고난 기질이라 받아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아이는 자폐증 판정을 받았다. 그때부터 부모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어떻게 아이에게 세상을 접근시키고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칠지,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을 자신들이 어떻게 이해할지, 바깥세상에 아이의 자폐증을 어떻게 이해시킬지 그들은 끊임없이 방법들을 고민하고 시도한다. 그 와중에 아이의 뛰어난 재능을 발견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훌륭한 동반자를 찾아낸다.
유아원에서 아이리스가 처음으로 웃는 모습을 보았다. 창백하던 얼굴이 바뀌어 있었다. 긴 속눈썹 아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가 반짝이는 동그란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또래 아이들 틈에서 아이리스는 유난히 키가 커 보였다. 아이리스는 물병을 들고 안에 물을 가득 채웠다. 다른 손에는 근래 항상 갖고 다니는 둥근 모양의 나무 퍼즐 조각이 들려 있었다. 아이리스는 물에 반쯤 잠겨 있는 장난감들 중 하나를 골라 그 위로 천천히 물을 부었다. 그러곤 고개를 숙이고 물이 떨어지면서 만들어지는 물결과 물방울을 열심히 관찰했다. 마지막 물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아이리스가 짧게 순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시원한 물 위에 손을 사뿐히 얹고 손바닥에 닿는 부력과 감각을 느꼈다. 나는 잠시 뒤로 물러서서 모든 것이 고요해진 순간 속에 있는 아이리스를 지켜 보았다. 다른 아이들은 교실의 다른 쪽으로 옮겨가 오전 간식을 먹고 있었지만 아이리스는 탁자 앞에 남아 있었다.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유아원에서 아이리스를 지켜보며 죄책감에 짓눌렸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잘될지도 모른다. 아이리스는 유아원에 잘 다닐 수 있을 것이다. (p149)
아이리스가 세밀한 부분에 흥미를 갖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나도 아이리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서 섬세한 부분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더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아름다운 것들을 감상하게 되었다. 내 자신의 감각 또한 살아나면서 더 깊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는 장맛비가 가든 룸 지붕을 세차게 두드렸다. 주방 입구에서 보니 아이리스가 창가에서 커다란 빗방울들이 베란다 위로 떨어졌다가 튀어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닥에 수많은 동심원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가녀린 몸을 똑바로 편 채 꼼짝 않고 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갑자기 팔짝 튀어 오르더니 창문 밖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흉내를 내면서 뛰기 시작했다. 내가 다가가자 아이리스는 나를 돌아보고 미소를 짓더니, 달려와 내 손을 잡고 문으로 데려가 문손잡이를 잡게 했다. 아이리스가 그 모든 것을 경험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밖으로 나가자는 의미였고 우리는 용감하게 밖으로 나갔다. 타닥-타닥. 아이리스가 맨발로 걷는 소리와 빗소리가 화음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