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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Jul 13. 2016

그들처럼 오늘을 난다


거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책들을 책장에 꽂다가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빌려놓고 잊어버린 책을 발견했다. 안도현 에세이집 <그런 일>이었다.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아 “배경의 힘으로 해오라기는 날아간다”는 구절을 읽었다. 시인의 언어. 창밖을 바라봤다. 뒤로 물러설수록 희미해지는 능선들을 눈으로 좇았다. 녹음은 짙어지고 있을 테지만 가까이 가보지 않은 이상 확인할 길이 없다. 대기는 꽤 오랫동안 부옇다. 새들 역시 보이지 않는다. ‘배경의 힘으로… 날아간다.’ 그렇게 격렬하게 부각되는 새들을 보고 싶다. 그런 새들은 여행자의 태도를 지녔을 것 같다. 시인의 말을 시각적으로 느끼고 싶지만, 저 창 너머로는 무리 지어 날아가는 새들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일 - 

안도현 지음/삼인


이편 하늘로는 철새 대신 군 헬리콥터들이 거친 굉음을 내며 지나치곤 한다. 며칠 전에도 세 대의 헬리콥터들이 하늘을 가로질렀고, 아이가 얼른 와보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는 베란다에 서서 육중한 철갑 뭉치들이 세 개의 점으로 작아졌다가 이윽고 소실점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하지만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2킬로미터쯤 떨어진 아파트 단지와 인근 도서관에서는 철새들을 해마다 볼 수 있다. 바람의 길,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곳을 비껴가는.


황량한 계절,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요란하게 끽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얼른 창밖을 내다본다. 철새들은 V자 대형을 맞춰 날아온다. 불현듯 열이 흐트러지면서 선두가 바뀐다. 고도를 낮춘 채 비스듬히 선회하다 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북쪽으로 날아간다.


연구에 따르면 철새들은 앞선 새의 날갯짓으로 생긴 상승기류를 타고 움직인다. 그렇게 힘을 비축하여 장거리를 이동한다. 리더는 제 힘으로 날아야만 한다. 경험 많고 힘센 리더그룹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어떤 철새들은 일렬로 날기도 하는데, 그런 새들 역시 동료의 날갯짓에 의존하여 에너지를 아낀다. 이들은 옆 동료와 엇박자로 날갯짓을 하여 난류를 일으킨다고 한다.


어제 저녁에는 식탁에 기대선 채 찌개 끓는 소리를 들으며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쇠재두루미떼 이야기를 읽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 오프닝멘트를 모은, 허은실 작가의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에서였다.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허은실 글.사진/예담


“겨울이 다가오면 그들은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기 위해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맥인 히말라야를 넘어야 합니다.
게다가 그 산맥엔
이 세상에서 가장 춥고 날카로운 바람이 살고 있죠.
하지만 새들은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바람을 이기려고 할 게 아니라 읽어야
산을 넘을 수 있다는 걸요.
어느 순간 날갯짓을 멈추고 바람에 몸을 맡긴 두루미들.
그 바람이 가장 높이 자신들을 띄워 올린 순간
필사적으로 날개를 퍼덕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가장 높은 봉우리를 넘습니다.”


배경의 힘으로 날아가고, 동료의 날갯짓에 기대 힘을 아끼고, 바람을 읽어 산을 넘는 새들. 나는 그 새들을 책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그런 생각으로 오늘을 넘는, 나날이다.


2016. 4. 1. 황산과 항주 사이 어디쯤. 배경의 힘으로 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배경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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