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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Jun 16. 2016

비평가에게 고하길

존 프리먼, 소설가를 읽는 방법

  내가 뉴욕 브루클린에서 처음으로 구했던 갈색 사암 아파트는 잡지 편집자와 그녀의 조용한 책벌레 남편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 집에는 계단을 따라 긴 서가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먼지가 잔뜩 쌓인 서가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서가에서 F로 시작하는 작가들의 책을 꺼내려면 계단을 반쯤 올라 난간 너머로 몸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말수가 적은 책벌레 남편이 3미터 높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몸을 빼고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을 손에 쥐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그러자 그가 수다스러워졌다. 파이어 섬에서 여름을 보내던 십대 시절에 프루스트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고, 대학생일 때는 톨스토이를 열정적으로 파고들었다고 했다. 나는 뒤늦게 독서에 빠진 터라 그의 서가와, 책에 파묻혔다던 그 한가롭고 문학적인 여름날이 부러웠다. 나는 그에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는 먼저 존 치버의 단편집을 한 권 꺼내줬고, 다음에는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를 건넸다.

      -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 “당신과 나 – 내 우상이었던 존 업다이크, 그리고 뼈저린 교훈”의 첫. 


  책을 읽다 말고 눈을 감는다. 눈이 침침했다. 건조한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할 일을 미뤄두고 책을 읽던 중에 무언가가 나를 툭 치고 갔다. 오랜만에 감각이 예민해져 있다. 최근에는 집중하는 일이 어렵다. 잠시 뒤 문장 하나가 떠올랐고 그제야 무엇이 마음을 어지럽혔는지 깨달았다.

  "자의식은 거대한데 자아는 없다."

  

  나는 눈을 뜨고 페이지를 앞으로 넘긴다. 

 제임스 우드라는 문학비평가는 최근 "소설이 불필요한 사실과 언어로 비대해지고 있다고, 특히 미국 소설이 그렇다고" 믿었고, "그 결과, 최소한 미국에서는, 자의식은 거대한데 자아는 한 톨도 없는 소설들이 판을 치게되었다"고 말했다. "수많은 걸 알고 있지만 사람 한명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특이한 방식으로 주목을 받는 정말 '똑똑'한 소설들"...


  은연중에 나는 이 문장을 소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한 것으로 읽었다. 불필요한 감정과 욕망으로 비대해져 거대해진 자의식, 그러나 자아라곤 한톨도 없는 인간. 헛똑똑이.

  혹독하네. 좀 억울해지는 걸. 

  살살 좀 하자고 내 안의 비평가에게 고해본다. 

  그는 오랜 세월 나를 비평해왔다. 자신의 안목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그는 자신이 나를 잘 안다고도 믿는다. 그의 단호한 믿음에 여전히 의기소침해지곤 하지만 요즘에는 그와 팽팽하게 각을 세울 때가 많다. 좀 컸다 이거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대놓고 떠드는 사람을 보면 경계심이 생긴다. 

  나는 가까운 친구로 지낸 세월 덕에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 사람과 결혼했다. 아이를 낳아 그 아이의 중요한 순간-거창하게 말하자면 인생의 여러 '첫 장면'들-을 지켜봤다. 그렇게 보낸 근 십여년간 깨달은 게 있다. 나는 볼 수 있는 것만 볼 수 있었고 그것조차도 정확히 본다는 보장이 없었다. 

  인간에게는 그/녀를 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각지대들이 있다. 어쩌면 그곳이야말로 그 사람의 고유성을 보여줄지도, 그곳에 그 사람의 진짜 자아가 거하는지도, 때로 그 사람의 비대한 자의식에 가로막혀 그 자아가 보이지 않는지도, 그 자의식이 자아를 지키기 위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 내가 그렇게 거대해진 자의식으로 지키고자 애쓰는 게 내 자아가 아니라 자아상이라는 의심이 들면, 마음이 엉클어진다. 오늘처럼.

.

.

         그래도 적당히 좀 하시지. 쳇.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 - 

존 프리먼 지음, 최민우.김사과 옮김/자음과모음


덧.


1. 지은이가 인터뷰한 70명의 작가 가운데

모르는 작가가 태반이고, 읽어본 작가는 손을 꼽는다.

책의 지은이, 존 프리먼이 세계적인 편집장이라는데 처음 들어봤다.

그래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지은이의 '여는 글' 때문이다.

<당신과 나>라는 제목의 자전적 글이었는데, 지은이의 독서이력과 그를 소설의 세계로 인도한 결정적 작가인 존 업다이크와의 두 번의 만남, 그 사이에 부침을 거듭했던 삶의 편린들이 단정한 문장으로 쓰여있다.

그의 이야기와 문장에는 왠지 모르게 사람을 집중시키는 데가 있었다. 이 인터뷰집에 대한 기대감은 (그가 만난 작가들보다) 순전히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단 한 명의 작가와 지은이의 '여는 글'만 읽어도 이 책을 만난 보람이 있을 듯.


2. 제임스 우드라는 (소설가이자 하버드 대학의 문학교수이기도 한) 문학평론가에 대한 외모 묘사를 읽다가 웃고 말았다.

"어딘지 모르게 죄송스러워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그는 토니 모리슨을 보고 "자기 등장인물보다 자기가 하는 말을 더 사랑한다"느니, 존 업다이크에게는 "책 쓰기를 자제하는 것보다 하품을 참는 게 더 쉬운 일처럼 보인다"느니 하며 신랄하게 쏘아댔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죄송스러워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깡마르고 상냥한 영국인"이라고 묘사된 걸 보니 웃음이... 훗  

작가들은 평론가를 참 싫어하겠어.   


3. 어느 인터뷰집에서든 '무라카미 하루키'는 빠지질 않네...



4. 이 책에 소개된 작가들은 지은이가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역시 처음 들어본) 문학 계간지 <그랜타Granta>의 편집장으로 지내면서 인터뷰한 이들로, 이른바 "세계문학의 얼굴들"이란다.

그러니까 영화 <남아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마>의 원작자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있지만 조앤 K. 롤링은 없다. 

그런데 이언 매큐언은 있는데 줄리언 반스는 왜 없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있는데 닉 혼비는 없다.   


5.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있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쓴 철학자, 로버트 M. 피어시그와 웬만한 소설보다 더 흥미로웠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쓴 신경학의, 올리버 색스. 생각지도 못했던 이들 이름에 반가움이 앞서긴 했다.

두 사람 모두 철학자나 신경학의보다는 저술가로서의 아우라가 강하며 위의 두 작품 모두 소설적 재미가 뛰어나 가독성이 좋다.


어쨌든 이 인터뷰집의 기묘한 다양성을 짐작(만)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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