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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Dec 24. 2022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

돈 드릴로, 제로 K


사람은 누구나 세상의 끝을 소유하고 싶어 하지. p11


1. 질문


부활, 재생, 윤회, 영생... 필멸의 운명이 품은 원초적 갈망을 종교가 아닌 과학으로, 신앙이 아닌 기술로, 소수가 지닌 거대한 자산으로 실현하려 할 때,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윤리적, 철학적 질문들이 있다. 운명을 결정하는 특권, 조력자살, 죽음의 선택 같은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본질적인 질문, 즉 삶과 죽음, 자아와 존재와 실존, 인간과 인간다움 등의 정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은 죽는 순간까지 답하기 어려울 실존적 질문들을 이야기 마지막에 도달하기까지 곱씹게 한다.  


생이 영속되는 세계에서 죽음과 삶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지고,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되는가. 

내가 더는 내가 아니게 되는 순간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정신과 영혼은 영속 가능한가. 

자아는 무엇으로 이뤄지는가. 

인간다움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인가.


소설 속 컨버전스 프로젝트는 사이언톨로지교의 최첨단 과학 버전처럼 보이는데 그 핵심은 냉동보존술이다. 죽음을 앞둔 소수 부유층이 주요장기와 뇌가 적출된 뒤 켈빈/절대온도 0도에서 냉동된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제프의 아버지 로스와 불치병으로 투병 중인 아내 아티스가 냉동보존 실험에 참가하기로 한다. 미래의 과학이 그들을 부활시킬 때까지. 껍데기로 남은 신체가 재건되고 나노봇으로 뇌가 편집되어 생의학적 교정을 거친 뒤 깨어난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까.


미래주의자들에게 피 묻은 돈을 줘라.
그러면 당신이 영원히 사는 것을 가능케 해줄 것이다. p126



2. 언어와 정체성


흙으로 인간을 짓고 숨을 불어넣었다는 창세기를 읽을 때마다 그 숨은 언어가 아닐까 생각해왔다. 의식의 여부가 생을 결정짓고, 의식은 언어로 이뤄졌다 여겼기 때문이다. 


소설 1부와 2부 사이에는 냉동보존 중인 아티스가 1인칭과 3인칭의 분리된 목소리로 인상적인 독백을 들려준다. 단속적인 문장들은 그녀의 의식이 파편화되었고, 그녀가 세계, 사물들, 타자, 자신, 그 무엇과도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부유하는 것을 보여준다. 단어들로만 이뤄진 자아. 영원 같은 기다림 뒤 나노 단위로 재구성된 몸뚱이 속에서 눈을 뜨게 되면, 그녀는 목소리를 융합하여 온전한 1인칭의 삶으로 돌아오게 될까. 그렇다면 그건 전혀 다른 영혼과 정신을 지닌 새로운 자기일까, 아니면 오래된 세계의 기억을 그림자처럼 거느린 예전의 자기일까. 그녀는 여전히 ‘인간’일까. 


의식을 구성하는 것이 언어라면, 정체성의 상당부분을 결정짓는 '단어들'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아가 분리되는 듯 느껴지던 순간들은 내가 주입된 단어들과 정의들로 내 의식을 채운 때였다.


그런 점에서 제프의 오랜 습관을 예사로이 넘길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현실에, 현재의 어느 한 순간에 묶어놓는 닻인 것처럼 단어를 움켜쥐고 천착한다. 이미 모든 것이 명명되고 정의내려진 세계에서 단어들을 스스로 정의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름과 소리까지 재점검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새이름을 선사하고 그에 어울리는 배경과 특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지어진 이름들은 폭격당한 사막의 풍경에 속한다. 아버지와 내 이름을 제외하곤.” 지어진 이름은 실체가 없고, 명명한 당사자가 그 이름과 어떤 실존적 관계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명당한 이에게도 새로이 지어진 이름은 무의미하다. 이 또한 주어진 이름에 불과하므로.) 

제프가 아버지와 자신을 예외로 삼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각각 다르게 발현되었으나 그 본성이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지는 인물들로, 로스는 자신이 되고싶은 인물을 설정하고 그에 맞게 스스로 이름을 지어 거대재벌이라는 새로운 자아를 실현했으며, 제프는 아버지 로스로부터 주어진 ‘특권과 편리, 돈’, 그에 어울릴 법한 성(姓)을 거부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살기를 택한다. 그들 모두 자신의 실존방식을 적극적으로 선택, 실현하려는 이들이다. 종국에는 죽음과 삶이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선택의 본질은 같아 보인다.


“새로운 의미들,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인식을 제시할 언어 체계. 그것은 우리의 현실을 확장하고, 우리의 지성을 심화할 겁니다.” (…) 우리가 전에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객관적 진실의 형태가 무엇이건 거기에 위축되지 않는 언어. p138



3. 존재와 실존


소설 곳곳에서 제프가 누군가를 관찰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군중 속에 멈춰서서 거리를 사유지처럼 점유한 이들. 눈을 사로잡는데도 존재의 이물감으로 시선을 피하게 하는 이들. 그리하여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듯 여겨지는 이들. 가야할 곳과 해야할 일, 만나야할 이, 주어진 당위성을 향해 걸음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멈춘 채 무언가에 골똘한 이들. 자신 안으로 시선을 완전히 돌린 나머지 타인/세상의 시선은 느끼지 못하는 이들. “실존은 스스로를 실현시켜 ‘본래성’의 양태로 있거나 자신의 선택을 남에게 맡겨 ‘비본래성’의 양태로 있다”는 하이데거의 말을 생각해보면, 이들이야말로 ‘본래성’의 양태로 ‘실존’하는 사람들인지도...


재탄생을 위해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내맡긴 아티스와 로스를 보면 죽음조차 실존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들에게 죽음은 이제 다른 의미를 갖게 되겠지만 말이다. 


“어떤 운명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영예 아닌가요?
우리가 여기서 원하는 게 뭘까요?
오직 삶뿐이에요.”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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