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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Jan 02. 2023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고, 가닿을 수 없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오, 윌리엄!>


“삶이란 얼마나 신기한가. P117”


“아이들은 조용히 앉아 있었고, 곧 베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내가 말했다. “나도 그래.”
우리가 헤어질 때 딸들은 내게 키스하고 나를 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대화를 나눈 뒤 마음이 몹시 심란했지만, 딸들은 특별히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경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p125-126”


2022. 12. 31. 해의 날.


어제 y언니, s언니와 간만에 안부인사를 나눴다. "그해 마지막 날에 하는 일이 새해 매일 하는 일이 된다네요." 그 말에 y언니는 그렇다면 재미나게 신나게 즐겁게 놀아야겠다고 했고 s언니는 한 문장이라도 써볼까 했다.

꼭 이 두 말이 마음에 남아서만은 아니겠지만, 온종일 마음의 고삐를 틀어쥐고 시간을 보냈다. 즐겁게,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하자.


오늘은 가장 긴 하루를 보내게 될 것 같다. 6시 30분 알람에 맞춰 일어나 온가족이 조조로 아바타를 보고 왔다. 남편이 날짜를 착각하여 티케팅을 해버린 바람에 결과적으로 두 배의 값을 치룬 셈인데 그 값어치가 있었다고 우리 모두 흡족해했다. “자기가 영화를 본 건지 나비족 다큐를 본 건지 싶었다는데,” 친구의 말을 전하며 조금 심드렁해 있던 J는 생각보다 더 재밌었는지 저녁에 아바타1을 봐야겠다 했다. 어쩌면 아바타로 시작하여 아바타로 끝나는 하루가 될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J가 늦은 오수에 빠져 있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둘 다 올 들어 최악의 컨디션으로 2주를 보낸 후 아직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12월이면 돌아가며 아픈 일이 잦았던 것 같다. 이쯤되면 가족 연말행사처럼도 여겨지는데... 그래도 괜찮아, 오늘은 괜찮았으니까 내일은 더 괜찮을 것이며 새해의 매일이 오늘 같다면야 내년은 올해보다 더 나을 거라고. 일년을 다짐하며 보내는 건 어렵지만, 하루는 가능하지 않나. 이런 태도로 새해를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단 하루만, 오늘 딱 하루만'의 태도로 말이다.




올해는 다시 책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도서관행이 정말이지 큰 도움이 됐다. 읽은 책의 절반도 기록을 남기지 못했고, 그마저도 단편적인 감상이 태반이었지만, 내 노트북에 적어도 22년도 독서 폴더가 만들어졌고, 내가 참 좋은 책들을 만났다는 흔적이 거기 남아 있으니 언제고 내가 보낸 시간을 되짚어볼 수 있다. 올해 내가 마지막으로 완독한 책은 <오, 윌리엄!>으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연작 소설이다. 몇 년 전 이 소설에 푹 빠진 나머지 앉은자리에서 완독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세세한 감상은 떠오르지 않아 찾아보니 독서일기가 남겨져 있었고 그게 뭐라고 든든했던지. 어떤 절절함도 그저 잔상으로만 남는다는 게 안타까워서. 시간이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지만.



전작에서 루시 바턴은 단 한번도 자신에게 사랑한다 말해준 적 없는, 냉정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어머니와의 관계를 돌아본다. 그러다가 조우한 건 가난과 폭력, 방치와 소외로 점철된 어린 시절의 자신. 뿌리 깊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직시하고 자신이 지닌 냉혹함과 욕망까지 껴안은 뒤에서야 그녀는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처럼 보였다. 상처투성이의 자아를 수용하면서 그런 자아의 속박로부터 자유를 획득한 것 같았달까. 그녀는 결혼하면서 자신의 성을 버리고 난생 처음 안식처가 되어준 윌리엄의 성을 따랐지만, 결국에는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라 고백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끝낸다.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이전 이야기가 어머니에게서 시작되었다면 <오, 윌리엄!>은 이제는 전남편이 된 윌리엄에게서 시작된다. 소설은 루시에게 (심지어 윌리엄 그 자신에게조차) 미스터리였던 그의 뿌리깊은 공포와 두려움을 들춰낸다. 노년의 루시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비로소 윌리엄을 알아가는 이 여정에서 나는 윌리엄보다는 루시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어쩌면 루시 자신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와 동행하는 장면 곳곳에서 루시는 그로 인해 촉발되는 과거 자신의 상처와 오랜 공포를 되짚어보고 재해석하게 되며 윌리엄(과 그의 어머니인 캐롤)의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자신과 자신이 맺은 관계들의 면면을 더 깊이 성찰한다.


한글문서로 무려 23쪽에 걸쳐 발췌문과 짧은 감상들을 남겨 놓았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바로 첫페이지로 돌아가 두 번 읽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들이 있는데, 그건 다시 읽는다 해도 풀리지 않을 것 같다. 그 삶을 내가 직접 산다 해도 여전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짐작하고 그걸 수정하고 다시 헤아려볼 뿐이다. 오, 윌리엄! 이 제목이 읽는 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뱉는 탄식처럼 느껴지는데, 그 탄식이 어느 순간 윌리엄이 아니라 루시를 향하다가 종내는 감탄으로 바뀐다. 소설의 마지막에 도달하면 이것이 스트라우트가 이끌고자 했던 바로 그 지점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저자가 의도한 바로 그 지점에 내가 도달한 것 같을 때, 그런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고양감이 있다.


“하지만 내가 오 윌리엄! 하고 생각할 때, 그건 또한 오 루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오 모든 이여, 오 드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소중한 모든 이여, 그런 의미는 아닌가?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자신조차도!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을 빼면.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다.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p297”


이제 나보다 더 나이든 루시 바턴이 나는 너무 사랑스럽다.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낸 그녀의 이름, 애정, 관계, 삶을 생각해 보면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없다. 전작에서는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이 슬프고 안쓰럽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이었다면 이 책에서는 그런 마음을 내가 그녀에게서 받은 것 같았다. 상처받지 않으려 가시를 내두른 내게 그러지 말라고 그럴 필요 없다고 마치 그녀가 탄식조로 내 이름을 부르며 다독여주는 듯했다. 그 손길이 나를 그녀처럼 성장시켜주기를.


소설 속 인물을 사랑하고 내 안에 새기는 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다. 내가 소설을 읽기 시작한 이유이며 어떤 딴짓을 해도 마지막에는 소설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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