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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Jan 25. 2018

내 이름은 루시 바턴

by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얼마 전에 집안 행사가 있어서 친정에 다녀왔다. 온가족이 모이면 오래 전 추억을 나누기 마련인데 서로 다른 버전의 기억을 갖고 있다는 점이 이 일의 핵심이자 묘미인 듯. 폭소와 투덜거림이 오묘하게 섞인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각자 삶의 궤도가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지점에서, 반드시 서로를 향해 회귀하게 되는 것을 느낀다.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다른지. 하지만 각자의 입장에 맞춰 편집된 기억들은 상대와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치트키가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열린 틈새로 우리를 구성해온 핵심 정서와 그 시절 우리를 지탱했던 갈망과 좌절 같은 것들이 슬며시 새어나온다. 농담하듯 허물없이, 때로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로 천연덕스럽게 우회하면서. 




    루시 바턴의 가족에게는 이런 일이 그렇게 유쾌하고 유연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여느 집과는 달리 “정말로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살아왔던 그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홀로 그 일을 해야 하는 루시에게는 고독한 일이기도 하다. 


    9주 가까이 입원해 있는 루시에게 몇 년 만에 엄마가 찾아온다. 그리고 시작되는 이야기. “자신의 감정과 말과 관찰이 오랫동안 자기 안에 꾹꾹 눌려 담겨 있던 것처럼” 엄마가 꺼내놓는 타인의 불행한 가정사들. 

   루시는 그렇게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굶주림에 시달렸던 나날. 가난과 학대, 따돌림. 굶주림과 수치심. 불쑥 낯선 사람에게 달려가 자신을 도와달라는,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자신을 구해달라고 말하고 싶은 절박한 충동에 시달리던 일. 단지 ‘따뜻해서’ 학교에 남아 숙제를 하고 외로움을 달래려고 독서하던 어린 시절. 그러느라 좋아진 성적 덕분에 대학에 갈 수 있게 된 사정. 영영 집을 떠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 잠 못 이루던 어느 해 추수감사절. 

   그녀는 많은 것들을 기억해내지만, 자신이 잘못 알았을 수도 있다고 결국 모르겠다고 중얼거린다. 

   2차대전에서 가장 참혹하고 길었던 전투에 참가했던 아버지. 두 젊은 민간인을 죽인 연유로 평생 죄의식과 신경쇠약에 시달렸던 사람. 맏이인 오빠는 서른이 넘도록 부모와 함께 지내면서 도살장에 끌려갈 돼지들 옆에서 잠을 청하는 동성애자이고 언니는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가난과 폭력 속에 방치된 사람들.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니는 어땠을까,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루시는 물을 수도 그 답을 들을 수도 없다. 엄마는 타인에 대한 이야기 속에 철저하게 자신을 숨긴다. 루시는 그저 그런 이야기라도 엄마와 나눌 수 있어 행복할 뿐이다. 그녀의 엄마는 척박한 삶, 수치심과 모멸감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거세시킨 사람이며,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 그저 한번씩 병상에 누운 딸의 발을 꽉 잡는 것이 전부이며, 딸의 곁에 닷새간 머물면서도 간이침대를 거부하고 의자에만 꼿꼿이 앉아 있는 사람이다. 마치 곧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처럼. 

   서로를 향해 머뭇거리며 내민 손은 결국 거둬진다. 


    많은 작가들이 한번쯤 쓰기 마련인 이 익숙한 서사와 주제를 작가는 섬세하고도 세련되게 다룬다. 무엇보다 상처와 감정을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언어로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가족 각자의 사정과 상처, 사건 등을 미루어 짐작할 뿐. 은밀하게 드러나는 몇 조각의 퍼즐로도 바턴 가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한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다. 전작 <올리브 키터리지>도 잔잔하니 좋았지만, 이 소설은 몇 차례나 울컥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엔딩과 완벽한 마지막 문장, 그 문장의 묵직함을 단단하게 떠받치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섬세한 서술! 


   끝내 자기 목소리를 찾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짓고는 “이것은 내 이야기”이며,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라고 흔들림 없이 선포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부디 놓치지 마시길.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 루시 바턴이 당신의 마음도 움직일 거라 믿는다.  


내 생각은 내 것이 되었다. (…)
나는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움직였다. -p211 

“나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통해 여러 번 구원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범퍼스티커처럼 진부해진다. 나는 그 사실이 슬프다. 아름답고 진실한 표현도 너무 자주 쓰면 범퍼스티커처럼 피상적으로 들린다는 사실이. -p98


“자기가 하게 되는 이야기는 오직 하나일 거예요.” 그녀가 말했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쓰게 될 거예요. 이야기는 걱정할 게 없어요. 그건 오로지 하나니까요.”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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