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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Feb 22. 2018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 시간 1

자기만의 방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책들이 있지 않나.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고전들이 대체로 그러한데 그 가운데 하나가 <자기만의 방>이다. 그 유명한 문장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로 손쉽게 압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던 이 책은 수년간 책장에 꽂혀만 있었다. 이십대에 구입한 또 다른 번역본은 십수년간 한 장도 넘겨지지 않은 채 누렇게 변색돼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같이 읽자고 권유한 이가 없었다면 다른 묵직한 이름들과 더불어 먼지 속에 묻어놓고 또 다른 십년을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자기만의 방> 1장을 막 끝냈다. 심하게 동요했다. 유려하게 흐르는 듯한 시적인 문장 그 자체에...



   버지니아 울프를 대변하는 여성 화자 ‘나’는 어느 가을날 사색에 잠겨 잔디밭에 들어섰다가 교구관리에게 쫓겨났고- 그곳은 대학의 특별 연구원이나 학자에게 허용된 장소였기에- 새커리의 <헨리 에스먼드> 원고를 살펴보려고 도서관에 갔다가 문전박대 당했으며- 여성은 대학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소지하지 않으면 도서관 출입이 불가했기에- 막 예배가 시작되려 하는 교회당은 들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그건 ‘나’에게 세례 증명서나 사제의 소개장 따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옥스브리지(실제로는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대학을 모델로 하는) 대학의 호화로운 오찬에 방문객으로 참석한 뒤 늦은 저녁 펀엄(이야기 상으로는 여성을 위한) 대학의 초라한 만찬을 불편한 마음으로 끝낸다. 남학생을 위해서는 막대한 대학 기금이 쉽게 조성되나 여학생을 위해서는 기금이 모이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왜 우리들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딸들을 위해 돈을 모으지 못했는지 묻는다. 돈을 벌면서 열세 명의 아이를 키우지는 못했을 거라고, 돈을 벌러 나갔다면 자신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태어났다 해도 평화로운 유년기는 보내지 못했을 거라고, 설사 그녀들이 돈을 벌었어도 법적으로 소유하지 못했을 거라고, 그러니 그 돈이 딸을 위한 교육비로 쓰이지는 못했을 거라고, 그리고 말한다.

 

...우리에게 물려줄 돈이 없었던 것은 어째서인가, 그리고 가난이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또한 부는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숙고했습니다. (…) 교회당에서 울리던 오르간과 도서관의 닫힌 문을 생각했습니다. 잠긴 문밖에 있는 것이 얼마나 불쾌한 일인가를 생각했고, 어쩌면 잠긴 문 안에 있는 것이 더욱 나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성(性)의 안정과 번영, 다른 성의 가난과 불안정을 생각했고, 작가의 마음에 전통이 미치는 영향과 전통의 결핍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서, 마침내 그날의 논의와 인상들, 분노와 웃음과 함께 그날의 구겨진 껍질을 말아서 울타리 밖으로 내던져 버려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푸르고 광막한 하늘에는 수천 개의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마치 불가사의한 사회에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p44) - <자기만의 방>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들과 나란히 읽어서인지, 울프를 읽으면서 솔닛의 목소리를, 솔닛을 읽으면서 울프의 목소리를 떠올릴 때가 있다. 톤도, 빛깔도, 화법도 모두 다른 듯 하지만 어느 순간 하나의 목소리로 합쳐진다. 여성이,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을 위한 이야기를 해서일까.


그 시절 사람들이 내게 해준 조언은 이 상황이 잘못되었으니 바뀌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내 생활을 바꾸거나 제한하라는 거였다. 예나 지금이나 이것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고방식이다. 공공 공간을 (혹은 남자들을) 바꿔서 여자들이 괴롭힘당하지 않고 길을 걸을 권리를 찾아주자고 말하는 대신에 여자들에게 공공 공간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바꾸라고 말하는 것, 심지어 그냥 포기하고 집안에만 있으라고 말하는 것 말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공격당한 경우라면 거의 모든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여자를 비난하는데, 그것은 남자를 비난하지 않으려는 방편이다. (p123) -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왼편에서는 냉철한 지성을 지닌 리베카 언니가 날카롭고 단단한 목소리로 성폭력 피해자들의 수난사를 이야기하고, 오른편에서는 섬세한 감성이 영롱하게 빛나는 버지니아 언니가 책장 앞을 서성이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탄식하듯 이야기한다. 닫힌 문과 잠긴 문에 대해서.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읽을 때보다 더 감정적이 된 데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적 감성이 단단히 한 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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