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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Jan 11. 2024

기습적으로 찾아와 안도하게 하는,


2023. 1. 6. 흙의 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몸을 옹송그리게 했던 차가운 대기는 기세가 한풀 꺾여 온화했다. 영상 2도라는 남편의 말에 오늘이 소한이라는 대꾸가 뒤따랐다. 소한(小寒), 작은 추위. 그래서 따뜻한가 생각하는데 시부의 말이 이어졌다. 

"소한에 가장 추운 법이지." 

"요즘에는 절기가 잘 맞지 않네요."  

"조상님들이 절기는 진짜 잘 만들었어." 

으음.... 그건 그렇다고 생각했다. 

"맞아요, 날씨가 엉망인 건 다 우리 후손들 잘못이죠." 

내가 받아 넘기자 보조석에서 기운 빠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각자 생각에 빠져 정오의 햇빛이 하얗게 내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고,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24절기는 원래 중국 황하유역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중국에서 소한 무렵은 이름만 봐도 대한(大寒)보다 추위가 덜한 시기임을 알겠다. 허나 1월 5, 6일경에 찾아오는 소한은 한반도에서는 가장 맹렬한 한파가 밀어닥치는 때이다. 오죽하면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고 할까. 하지만 예측불가의 기상이변들이 계절마다 우리를 시름케하고, 절기를 따지는 일은 현재의 삶과 점차 유리되어 어떤 상징이나 비유, 보편적 지혜로 남게 되는 것만 같다. 가령, 어느 한 시절의 마지막 추위를 앞서 대비해야 마땅하며,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충분한 쉼과 에너지의 응축이 필요한 법이고, 온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안에 켜켜이 깃든 냉기를 모조리 쏟아버릴 필요가 있다고. 아, 그래서 옛사람들이 "소한 추위는 꾸어서라도 한다" 했던가. 

 

그날 저녁 거짓말처럼 기온이 뚝 떨어졌다. 책을 읽다가 심상치 않은 기운에 고개를 들었더니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느리게 나풀거리던 눈은 어느새 무섭도록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검은 밤이 희붓해졌다. 한기가 치솟아 무릎담요를 덮었다.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도록 매해 소한이면 찾아오던 기습적 한파가 여전히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에 안도감이 차올랐다. 좋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 정도 추위라면 "소한이 대한 집에 가서 몸을 녹이는" 일도 벌어지지 않을까. 그러니 대한의 포근함도 기대해보겠어. 


보름 뒤면 계묘년의 마지막 절기, 대한이 찾아온다.   


'한파와 기습적 폭설'이라는 기상특징으로 소한(小寒)이 난생처음 뇌리에 박히던 저녁. 잘 찾아온 절기에 안도하고 곧 다가올 절기를 기대해본다. 지속되는 것들을 찾아 감사하는 마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21세기 절기의 새로운 역할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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