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스완네 집 쪽으로 1>
2024. 3. 7. 낭의 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 스완네 집 쪽으로 1>
1부 콩브레 편을 마쳤다. 화자 내가 설핏 잠에서 깨어 자신이 누워있는 그 방이 ‘여름의 방’인지 ‘겨울의 방’인지 혹은 유년기를 보낸 ‘콩브레의 방’인지 기억을 더듬으며 시작된 회상의 1부가, 아침햇살로 방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으며 끝을 맺는다. 1권이 수미상관의 완결된 구조를 지녔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회상이 그 향방을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거침없이 뻗어나갔던 것이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태세를 취하면서 동시에 콩브레 시절의 회상이 일단락된다.
13권 완독이 부담스럽다면 1권의 독서로도 이 책의 진수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한권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오래전에 사둔 이유가 순전히 소장욕심에 사둔 책들을 끝내 완독하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테마별 가장 좋은 문장들을 엄선하여 흐름에 맞게 모아두었다는 압축본보다 1부 콩브레 편을 충실히 읽는 편이 역시 나을 듯.
주인공 마르셀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는 것들(어머니와의 관계성, 콩브레에서의 일상, 그의 세계에 중요한 상징으로 존재하는 첨탑과 두 산책로, 문학적 열망의 씨앗, 첫사랑 등)이, 그리고 콩브레 시절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가 세밀화처럼 그려진다.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이승우 작가는 심리학자들의 기억에 대한 연구를 언급하는데, 사람들의 기억은 대개 열 살에서 스무 살 사이에 집중해 있다고. 기억의 핵심은 인생의 ‘첫 경험’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나이대에 인생행로에 지침이 될 중요한 일들(책/스승/친구와의 만남 등)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콩브레 편이 7편 통틀어서 가장 의미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 장편소설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 1권에 있다. (이 장면에서 독서를 멈출 위험도 있지만...)
나는 이 장면을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맛이 유년기의 추억을 되살렸다고, 감각(맛/향기)이 잃어버린 시간으로 가는 통로이자 추억의 매개물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라고만 생각했다.
다시 읽어보니 그 회상의 과정은 보다 정교하고 끈질기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 장면의 아름다움은, 내 기억과는 달리, 홍차의 첫 모금이 불시에 깨운 감미로운 기쁨에 있지 않았다. 마치 꽃봉오리가 순식간에 개화하여 고유한 아름다움을 펼쳐보이듯 과거의 특별한 순간이 혀끝의 감각에서 불시에 되살아난 것도 아니었다. 주인공이 느낀 정체모를 기쁨의 감각은 금세 사그라들고 만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어떤 감각이 애틋한 (어쩌면 향수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더라도, 대체로 연기만 피어올리곤 감정의 불꽃은 가뭇없이 꺼져버리고 만다. 켈트족 신앙 속 잃어버린 영혼이 물질적 대상에 갇혀 누군가가 알아보지 않는 이상 해방되지 못하듯이, 감각이 일시적으로 일깨운 향수의 대상 또한 과거 속에 영영 묻혀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마르셸은 홍차를 거듭 마시며 그 감각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가 맛본 기쁨이 시각적 추억과 관련 있음을 깨닫고는 마침내 감각의 시초를 기억해낸다. 그렇게 콩브레 시절의 회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그때까지 형체가 없던 종이들이 물속에 잠기자마자 곧 펴지고 뒤틀리고 채색되고 구별되면서 꽃이 되고, 집이 되고, 단단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p91
마들렌 장면의 아름다움은, 6페이지 가까이 서술된 그의 끈질긴 노력에 있는 것 같다. 특히 이 장면의 마지막 문장은 소설(1부) 통틀어 가장 아름답다.
이 장면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주석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마들렌 장면 앞뒤로 배치된 회상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것. 잃어버린 시간이 완전히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의지나 지성’보다는 ‘우연과 감각’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도입부, 그가 한밤중 침실에서 어떤 ‘의지’를 갖고 퍼올린 과거의 숱한 방들과 콩브레 시절 어머니와의 애틋한 추억(굿나잇 키스 장면) 들은 단편적 기억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들렌과 홍차의 맛과 향기는,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통째로 불러들인다. 이렇게 기억의 차이를 드러내는 회상의 배치가 매우 흥미로웠다.
이제 2권을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스완 씨, 그의 스캔들러스한 사랑이 펼쳐질 예정. 1인칭 주인공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동했나 싶었는데, 서술자 내가 괄호 속에서 출현한다. 좀 귀엽...
덧.
1. 1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예상 외로 스완 씨가 아니라) 르그랑댕 씨.
귀족과 사교계, 스노비즘을 반대하는 새로운 지식계층을 대변하는 인물이지만, 귀족 계급에 대한 무의식적 선망(그들을 모방하려는 욕망)을 품고 있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르그랑댕 씨가 마치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르그랑댕 씨가 입을 열 때마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변명이라고 늘어놓는 말이 좀 하찮...
2. 가장 낭만적인 장면은 역시 주인공이 첫사랑(스완 씨의 딸)을 만나는 대목.
운명적 첫만남의 요건들이라 하면, 자고로 첫사랑의 청량함을 주기 위한 촉촉한 배경(호수, 분수, 불시에 작동되는 정원의 스프링쿨러,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하다못해 교정 구석의 수돗가)에서 어린 영혼을 심장에 메다꽂는 시선의 마주침이 있어야 하고, 기왕이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거나 꽃잎이 흩날리거나 사방에서 초록초록한 기운이 물씬 풍기면 좋고, 한 사람의 시선이 열렬하더라도 한 사람의 시선은 그 속을 알 수 없다면 더욱 좋은, 뭐 그런 클리셰들이지 않겠는가.
그 원형 같은 장면이 이 책 말미에도 있다.
"즉 우리로 하여금 사물을 단순한 광경이 아니라 비할 데 없는 존재로 여기게 하는 감정은 없었으며, 그 어떤 것에도 콩브레 성당 뒷골목에서 본 종탑 모습에 대한 추억만큼 내 삶 깊숙한 부분을 지배하는 것도 없었다."
"결국 우리가 되돌아가는 곳은 항상 종탑이었고, 종탑이 언제나 모든 것을 지배했다. 종탑은 예기치 않은 뾰족한 봉우리로 마을 집들을 불러내면서, 마치 수많은 인간 속에 몸을 파묻어도 내가 결코 혼동하는 일이 없는 신의 손가락처럼 내 앞에 모습을 내밀었다." p123
"하지만 나는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을, 내 정신적인 토양의 깊은 지층으로, 아직도 내가 기대고 있는 견고한 땅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나는 사물들을, 존재들을 믿었다. 내가 이 두 길을 돌아다니며 알게 된 사물들이나 존재들만이 아직도 내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아직도 내게 기쁨을 주는 유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