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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Jul 20. 2024

여섯 단어로 심금 울리기


2024. 6. 23. 해의 날. 초여름에 어울리는 비로 잠시나마 상쾌했던 오후. 폭염 장마 태풍 쓰리콤보의 여름을 앞두고 잠시 숨 고르기.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이라는 장르가 있다지. 한 출판인이 헤밍웨이의 초단편에 붙인 명칭으로 아주 짧은 길이의 단편을 일컫는다. 시초는 헤밍웨이가 여섯 개의 단어로 쓴 이야기라고 한다. 에피소드의 진위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알려지기론 지인과의 10달러짜리 내기에서 나왔다고.


어느 날 한 바에서 헤밍웨이에게 단어 여섯개로 심금을 울릴 수 있겠느냐고 지인이 도전하자 단숨에 냅킨에 써내기를,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이보다 더 짧은 이야기도 있다. 불과 네 단어다.


"I kept myself alive."


조이스 캐롤 오츠가 써낸 것으로 제목이 이야기를 완성한다. <Widow’s First Year>이다.




메리 루플의 산문집, <나의 사유재산>을 읽고 있다. 에세이만이 아니라 플래시픽션도 수록되어 있다. 허먼 멜빌의 단편소설을 경쾌하게 오마주한 플래시픽션을 읽고 기분이 아주 유쾌해졌다.


<필경사 바틀비>의 #21세기소년버전 #해피엔딩버전 #바틀비햇살버전


<프랭크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독서과제를 거부하는 학생 프랭크와 이 게으르고 영리한 학생을 독서와 문학의 세계로 이끌려는 선생의 자강두천 같은 이야기.


“책 속에서 숨겨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

“아니요, 저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며 되고 싶은 모습 그대로인데요, 선생님.”

“책과 사랑에 빠지고 마음을 빼앗기게 될 걸.”

“글쎄요, 저는 지금 그대로의 제 마음을 지키고 싶어요.”


그러다 영어 선생은 프랭크를 위한 완벽한 책을 찾았다며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강권한다. 프랭크는 이에 완벽하게 맞대응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방심해있다가 웃음이 빵 터졌다. 선생은 더 흥분하여 “바로 그게 요점이야!” 외쳐대고, 나는 이제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ㅋㅋ 프랭크는 자신이 방금 내뱉은 말이 미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임을 당연히 알지 못한다. 위대한 작가의 문제적 인물 '바틀비'가 해고되고 수감되어 아사하기까지 고수하여 현대직장인들의 심금까지 울리게 한 바로 그 말임을, 그가 어찌 알겠는가. 알았다 한들 그 말이 그의 고유한 말이 아닌 건 아닐 뿐더러, 어쩌면 책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자신 '바틀비'와 조우할 수도 있으나, 그랬다 한들 자유로운 자신의 망가진 버전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었겠느냐 되레 따졌을 인간이므로, 그런 인간답게 그는 딱잘라 거절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프랭크는 교실을 떠나고 선생은 홀로 남겨진다. 슬퍼하고 안타까워한다. “인생에서 놓쳐버린 그 모든 연결과 기회에 대해, 그 모든 실패에 대해”, 프랭크와 허먼 멜빌과 바틀비 그리고 자기 자신, 심지어 문학에 대해서도. 그러거나 말거나 프랭크는 그날의 햇빛을 유유자적 즐기며 “책장 사이에 갇히지 않은 채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마냥 자유롭다. 뭐 그런 유쾌한 이야기를 읽었다.




 나도 한번 흉내내볼까.  

"만료된 여권임을 공항에서 알았다. 제주에서 왔는데."

아버지 친구분의 십수년 전 경험담. 인천공항에서 일행이 모두 패닉에 빠지셨다고. 새 여권이 아니라 만료된 여권으로 바꿔 갖고 오신 것을 뒤늦게 아신 것이다. 아니, 여권 가지러 되돌아갈 수도 없는데, 얼마나 황당했는지 몰라. 아버지는 당시 함께 허둥지둥하셨겠으나 이제는 우스운 후일담이 되었다는 듯이 껄껄 웃으셨다. 나는 상상만으로 아찔해서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만 해도 뇌가 새파랐던 나는 내 미래의 뇌도 그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겠으나... 그분 나이에 도달하기도 전에 나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 되고 말았다. 언젠가 동네 마트에서 장을 잔뜩 보곤 계산대에서 카드를 내밀었는데, 되돌려받았다. 웃음 섞인 위로와 함께. 저도 종종 그래요. 아, 네... 멋쩍게 웃으며 장바구니에 든 것들을 주섬주섬 돌려놓았다. 너무너무 창피했다. 아니 왜 도서관 카드를 들고 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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