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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렵고 때로는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정기현, '슬픈 마음 있는 사람',《2024 소설 보다 가을》

by islander


2025. 1. 31. 쇠의 날.


그날 저녁에는 온기를 주는 이야기를 읽었다고, 냉소와 분노와 회의로 마음이 얼어붙기 쉬운 이 계절에 읽기 좋은 소설이라고 독서노트에 기록해두었다. 창밖을 보니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제야 몸이 떨려왔다. 관절 마디마다 뻣뻣하게 어는 것도 모르고 소설이 주는 온기에 취해 있었다. 그날 대수롭지 않게 넘긴 문장이 하나 있었다. 그걸 오늘에야 알아차렸다. 이 소설을 기억할 때 이 또한 잊지말라는 듯, 뒤표지에 외따로 적힌 문장을 그날의 기록에 덧붙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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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전에 책들을 모조리 반납했다 생각했는데 빠진 책이 있었나 보다. 소설집 하나가 연체되었다는 알림톡을 받았다. 폰으로 취나물페스토 레시피를 검색하던 중이었다. 저녁 준비를 하다말고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거실에서 진격거를 보며 조카 줄 목도리를 짜던 J가 저 엄마 또 저러네 하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하필 작고 얇은 책이라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방학초 J가 건들기만 한《해커스보카》와 내가 언제 그곳에 놓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사이에 깊숙이 끼여있었다. 잊지 않도록 책상에 올려놓는데 뒤표지의 문장에 시선이 닿았다.


“슬픈 사람은 슬픔 한가운데 서 있었고 실은 슬프지 않은 사람들은 슬픈 얼굴을 하고 슬픔 한가운데 선 사람들의 기색을 살피다 집으로 돌아갔다.” p120


...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껄끄러움은 부끄러움인가. 내가 슬픈 사람들과 함께 슬퍼한다 생각할 때 실상 내가 하는 일이라곤 슬픈 얼굴을 하고 슬픔 한가운데 선 사람들의 기색을 살피다 내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전부 아닐까. 근래 느꼈던 감정이 실은 슬픔으로 가장된 두려움은 아니었을까.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예의 문장이 들어앉은 장면을 찾아 책장을 넘기다가 결국 책상 앞에 앉았다. 손질하다 만 취나물도 냉장고에서 찾아보던 레몬즙이며 다진 마늘이며 죄다 뒷전으로 둔 채 단편을 다시 읽었다.




이야기는 잔잔하다. 갈등도 사건도 없으며 인물들도 말수가 적다. 하지만 이른바 ‘김병철 들어라’ 낙서가 이 고요한 이야기에 불협화음처럼 끼어든다. 일련번호가 붙은 이 경고성 낙서들은 욕설과 원한과 사연을 조각조각 담은 채로 동네 곳곳에 숨겨있다. 한때 ‘부랄친구’가 15년 전 어쩌다 ‘개잡놈’이 되어 ‘곧 파멸한다’는 저주를 받게 되었는지 동네 노인들의 증언으로 소설 말미에 드러나는데, 이는 이야기의 텐션을 유지하는 작은 축이 된다. 외곽 주변부 고가도로의 무게에 짓눌린 듯 보이는 오래된 마을과 한때 마을을 장악했던 악의와 파괴된 삶들,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 유예되고 정체된 듯한 인물들, 일상의 한 부분처럼 들어와 있는 노인들의 죽음. 이야기에 흐르는 정서는 기본적으로 슬픔에 가까워 보이나 체감온도는 따뜻하다. 어둡거나 울적함과는 거리가 멀다. 유머러스한 문장 덕도 있지만, 슬픔이 종내 짝을 이루는 건 기쁨(이리라는 희망)이며 이것이 사랑의 본질처럼 생각되어서이다.


이야기 배경에 오래된 관계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면, 그 중심에는 탁구메이트인 기은과 준영의 관계가 놓여 있다. 서서히, 그러나 분명한 변화를 향하여 또박또박 나아가는 것이, 기은의 산책과도 닮았고 준영을 향한 마음과도 닮았다. 작은 변주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변화. 이것이 좋았다. 기은의 질서 잡힌 일상이 마치 준영과 주고받는 탁구공처럼 똑딱똑딱 단조롭고 따분한 리듬으로 반복되지만, 준영이 스핀 먹은 공을 기은에게 넘기고 기은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친 순간 기은의 하루도, 그들의 관계도 처음과 달라진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야기 속 ‘슬픈 마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랑하게 되는 마음’으로 해석했다. 거기 ‘슬픔’이 깃들 수 있으나 ‘기쁨’으로 바뀌리라는 가능성으로 읽었다. 슬픈 마음과 기쁜 마음이 한데 어우러져 사랑이 된다고 말이다. C.S.루이스도 이와 비슷한 말을 남겼다.


"The pain I feel now is the happiness I had before. That's the deal."


그의 말이 함의하는 바, 사랑은 상처받을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이다. 모든 사랑에는 행복과 짝을 이루는 아픔과 고통이 내재돼 있고 모든 연인은 마음이 부서지는 걸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사랑의 거래다.


기은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산책을 떠나고 하루를 살아보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자신이 비로소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 된 것에 아늑함을 느낀다. "가장 어렵고 때로는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랑의 여정, 그 첫 발을 뗀 것이다. 다시 읽어보니 기은의 그런 변화가 보다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개입되려는 의지가 느껴졌고, 이것이 관계의 변곡점을 만들어냈다고, 슬픈 마음이란 결국 연계되는 마음을 뜻한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산책의 층위가 달라졌듯이 마음의 층위도 달라졌고 일상은 다른 리듬을 이제 갖게 될 테지.


좋은 소설을 읽었다.


“가장 낮은 층위의 산책이라면 오직 자신에 대해 골몰하며 걷기. 김병철을 저주하는 마음으로 마을을 거닐었을 낙서 주인의 산책과도 같은 층위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그 이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그 이유, 손해 보지 않고 살아가는 위한 적당한 처세술, 그때 그렇게 말했어야 했어, 하는 생각들에 빠져서 하는 산책. 두번째는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걷는 것. 일종의 수양과도 같은 걷기인데 커다랗고 예상 가능한 것들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머릿속이 투명해지고 맑아진다. 맑아진 머리로는 잠을 잘 잘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렵고 때로는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걷기, 바로 (...)” p123
“기은은 오늘 모험을 나선 목적이 김병철의 낙서를 밝혀내는 데 있지 않고 준영에게 이 모든 것을 알려 주고자 함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자신이 출발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연달아 알게 되었는데, 그러자 마음에 슬픔이 깃들었다. 준영을 뒤따라 교회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왠지 그럴 수 없었고 이것은 슬픈 마음이었다. 기은은 자신이 비로소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 된 것에 아늑함을 느끼면서도 슬픈 마음을 가지게 된 덕분에 슬픔 속에 한참을 머물다 자리를 떴다.”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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