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국을 말하다》
2025. 3. 18. 불의 날.
지난달 J의 원룸 자취방을 새로운 곳으로 옮겨주면서 예의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쉽다...기보다는 억울하달까. 겨울에 들어선 지 얼마나 되었다고 '두달 후'라는 자막과 함께 봄의 초입으로 훌쩍 건너뛴 것 같았다. 누군가 내 발등을 지그시 밟아 시간의 가속페달에서 도무지 발을 뗄 수 없다. 남편은 꽃 들고 미소 짓는 부처처럼 온화하게 지내다가 마침내 출근을 앞두곤 으아아, 하며 머리카락을 움켜쥐었고, 그 곁에서 J는 망한 시간표를 손에 쥐고 망연자실. 그 모습을 엊그제 본 듯한데, 3월도 중순이다.
시간을 강탈당한 기분에 일기장을 들춰봤다. 음, 태반이 날씨 기록(오늘은 난데없이 눈이 내렸다)... 지난 겨울들과 비교해보면 그럭저럭 무탈한 나날이었으니 감사해야지.
요즘에는 '별 일 없지?'라는 인삿말(저변에 긍정적 답변에의 소망과 압박을 품은 말)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그렇다는 대답이 선뜻 오가면 서로 안도한다. 이 나이에 뜻밖의 기쁜 소식이랄 게 없으니, 무소식이 희소식. 그러니 우리, 아무 소식 없이 지냅시다. 뭐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누군가에게 안부를 물을까 하다가 뒤로 미뤘다.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에요.
《소설, 한국을 말하다》
제목 그대로다. 앤솔러지 한 권으로 보는 현재 한국사회랄까. K-정신, AI, 콘텐츠 과잉, 거지방, 번아웃, 고물가, 팬심, 다문화, 새벽배송, 중독, 식단 등을 소재로 한 초단편소설 21편이 묶여 있다. 특정 주제를 정해놓고 여럿이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이야깃감으로 나누고자 한다면, 이 책 또한 좋은 재료가 될 것 같다. 그게 어떤 주제이든 간에 이 소설집에서 한 편은 골라낼 수 있을 듯.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뒤, 코로나 직후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기에도 좋겠다.
키워드들만 놓고 보면 개인도 사회도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지만 언제는 밝았나). 그럼에도 조경란 작가의 <금요일> 속 주인공처럼 많은 이들이 ‘사람의 일’로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생각하는 일을 지금도 하고 있을 것이다.
가령, 누군가 분풀이로 나무에 박아놓은 “못을 뽑는 일, 그것도 사람의 일이라면 고작 그 정도밖에는” 할 수 없을지라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도 아닌데다가 그 수고로움을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소소한 마음씀씀이가 오히려 자신을 궁색하고 피로한 상황으로 내몰지라도.
그런 그들에게도, 그들이 “그런 것처럼 누군가 한 번쯤 작은 호의를 베풀어주기를” 김희진 작가의 <사람의 일>을 읽으면서 또한 생각했다.
무탈한 나날 속에서 빠짐없이 모인 식구와 종종 밥상을 나누고 별일 없이 보낸 하루에 감사하며 내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오늘이 이어지기를.
심호흡, 마음 씀, 감사와 기도, 그리고 우리가 인간임을 잊지 않기.
“한숨이 아니라 큰 숨이라고 송 씨는 말해주고 싶었다. 이렇게 가족이 다 모인 게 안심이 돼서, 은행나무에 누가 박아놓은 못을 다 뽑아서. 송 씨는 점심시간에 그 일을 했다. 얼마 전부터 누군가 상가 건물 앞 오래된 은행나무에 못을 박아놓기 시작했다. 분풀이인지 분노인지 잘 빠지지도 않는 굵고 긴 나사못들을. 어젯밤에는 은행나무가 비명을 지르는 꿈을 꾸었다. 장도리로 애써 수십 개의 못을 빼내면서 송 씨는 누군가의 그 분노가 다른 데로, 사람에게로 향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최근에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을 보면 알 수 없는 일이었고 송 씨는 못을 뽑는 일, 그것도 사람의 일이라면 고작 그 정도밖에는 할 수 없게 될지 몰랐다.
금요일 저녁, 함께 밥을 먹기 위해 테이블에 빠짐없이 모여 앉은 가족들이 보였다. 송 씨는 다시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했고 묵직한 가방을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기까지 무언가를 위해 짧게 기도했다.”
- 조경란(가족 편), <금요일>, p90
“지금 자신이 그런 것처럼 누군가 한 번쯤 작은 호의를 베풀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희수는 밤 11시가 되기 전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 김혜진(노동 편), <사람의 일>,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