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8년 베링해에서 멸종한 생물이 있다. 기록된 바 길이 8-10미터, 무게 5-12t에 달하는 북극 바다소였다. 이 거대한 바다생물은 탐험가 스텔러에게 처음 발견된 지 27년만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수백만년 동안 해초를 뜯어 먹으며 평화로이 바다를 떠다니던 바다소는 자신의 살과 지방과 가죽을 탐내던 이방인들을 적대하지 않았다. 자신을 쓰다듬는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였고 공격하는 손길에는 신음을 내지르며 도망갔을 따름이다. 허나 동료가 위험에 처하면 여럿이 구하러 갔다고 했다. 몰살은 쉬웠다.
스텔러 바다소 상상도. (이미지 출처: Biodiversity Heritage Library)
홀로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 어밀리아 에어하트는 적도를 날아서 지구를 일주하려는 인류 최초의 미션을 수행하다 마지막 구간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 1937년 7월 2일 오전 7시 42분. 작은 무인도에서 미해안경비대가 연료와 침대를 준비하고 그녀를 기다렸지만 도착한 건 목소리뿐이었다. "당신들 위를 날고 있을 텐데 보이지가 않아요. 연료가 얼마 안 남았어요." 그녀의 죽음은 '버뮤다 삼각지대'와 더불어 항공 6대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고.
이미지 출처: San Diego Air and Space Museum Archive
나는 이 사라진 존재들을 《머나먼 섬들의 지도 Atlas of Remote Islands》에서 발견했다.
스텔러가 남겼다는 보고서. 검은 홍채와 노란빛 감도는 푸른색 눈동자, 그 어떤 동물과도 닮지 않았다는 머리, 인어 같은 가슴과 갈퀴 모양의 꼬리. 바람 잔잔한 조용한 봄날 저녁에만 짝을 이루고 교미 후에는 서로를 꼭 끌어안는다는 거대한 순둥이들. 베링해의 세인트조지섬 항목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섬은 모양은 이상하지만 아름답다." 스케치와 발굴된 뼈의 형태로 훗날 복원된 바다소의 이미지들을 찾아보고서야 나는 이 말을 이해했다. 섬은 바다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겨울철 황소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젊은 별 일렉트라의 이름을 딴 비행기, 그 앞에 서 있는 자신만만한 젊은 비행사와 노련하고 신중해 뵈는 항법사의 마지막 모습. 여유로이 웃고 있는 얼굴에는 두려움과 의심 한 점 없다. 그런 그들을 기다리던 장소로 기억될 태평양의 하울랜드섬. 구름 한 점으로도 가려질 만큼 작다는 이 환초섬에는 에어하트 라이트라 불리는 등대가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손끝까지 차가워지는데 어쩌면 그건 연휴가 끝나고도 멈추지 않는 서늘한 가을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을장마가 끝나면 풀벌레들의 영롱한 울음소리도 사라지고 없으려나.
북디자이너이기도 한 작가 유디트 샬란스키는 55개 섬의 이야기를 독특한 지도책에 담았다. 책은 내용만이 아니라 만듦새까지 특별하다. 2009년 '가장 아름다운 독일책'으로 선정되었고 'Red Dot Design Award' 까지 받았다고(하여 원서 초판을 찾아보니 어린시절 아버지가 쓰던 현금출납부가 떠올랐다..).
섬마다 할당된 왼쪽 페이지에는 섬의 지리적 정보, 역사적 사건의 연대기, 섬에 얽힌 독특한 이야기 등이, 오른편에는 저자가 제작한 해도가 실려 있다. 지도는 간결하면서도 정교한 지형도를 오려 담청색지에 붙여 만든 듯하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머나먼 섬'을 모순적으로 감각하게 된다.
섬은 지도 바깥에 실재하지만, 지도상에서만 존재할 성 싶다. 그건 샬란스키가 취사선택한 이야기들 때문일까. 해적의 보물이 파묻혀 있다고 믿어 16년간 섬을 파헤친 이라든가(그는 죽는 순간까지 그 무인도를 보물섬이라 믿었다) 여섯살에 꿈에서 배운 언어가 폴리네시아의 섬에서 실제로 쓰이는 언어라는 걸 알고 그 섬을 찾아가는 이의 이야기 들은 언제가 한번쯤 들어본 듯도, 숱한 몽상 속에서 그려본 듯도 하다. 마치 어린 시절 사회과부도를 들춰보며 상상하던 이야기들처럼. 그리하여 샬린스키의 섬들은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섬들은 우리가 꿈꾸는 지상 낙원일까. 새로운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일까. 콘크리트와 소음 속에서 숨이 막혀올 때 간절해지는 바다 너머처럼? 베를린 장벽 안에서 나고 자란 이가 지도를 보며 꿈꾸던 '진정으로 아름다운 곳'처럼?
"낙원은 섬이다. 지옥 또한 그렇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예상치못한 잔인한 장면들로 가슴이 조여든다. 고립된 공간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랍지는 않지만. 섬만이 아니다. 실상 어느 곳이든 그렇다. 낙원도 지옥도 될 수 있으며, 도피처도 감옥도 될 수 있다. (인간이 진정으로 거주하는 자리는 마음인가.)
섬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나는 섬에 대한 환상이 (거의) 없다. 있다 한다면, 그건 섬 자체가 아니라 고향과 지나간 시간이 불러들인 환상일 것이다.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존재와 시간을 그리워할 뿐이다. 그런데도 섬, 특히 '머나먼 섬'이라는 말 앞에서는 저항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낀다. 이 감정은 갈망에 가깝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먼곳을 향한 갈망’이다. 솔닛의 '먼곳의 푸름'이나 하루키의 '먼 북소리'가 이끄는 곳. 어쩌면 샬란스키의 '머나먼 섬' 또한 그런 곳에 있을지도. 그녀의 섬들은 그녀의 지도 속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존재하니까.
#간적없고앞으로도가지않을
#55개의섬들
#머나먼섬들의지도
https://www.youtube.com/watch?v=z0ZSuZquP_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