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어느 결혼기념일에, 남편은 환하게 웃으며 작은 검은색 파우치를 내게 건넸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일뿐더러 판매랭킹 1위의 신상핫템이며 매끈하게 잘 빠진 디자인과... 아마도 펄와인이라는 색깔을 강조했지 싶다. 내가 그 선물을 마음에 들어할 거라 남편은 믿어 의심치 않는 듯했고, 나를 열렬히 바라보는 눈빛이 꼭 신이 난 댕댕이 같았다. 기대감에 나도 덩달아 웃으며 파우치를 열었다.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대용량 휴대용 외장하드가 들어있었던 거다. 메탈릭한 매력이 넘치기는 했으나, 예뻐봤자 외장하드... 나는 효용성 제로의 예쁜 쓰레기 따위를 원했고, PC가 아닌 나를 위한 액세서리를 기대했을 뿐. 이웃집 댕댕이는 공을 던졌더니 꽃을 물고 오는데 우리집 댕댕이는 흙내음 신선한 햇감자를 캐왔구나, 뭐 그와 비슷한 상념에 젖었달까.
시간이 지나자 나는 이 감자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감자가 아닌가! 지카우치 유타의 말을 빌리자면, 이 감자에는 “상품가치, 시장가치에 담기지 않는 ‘잉여’가 담겨” 있으며, 그 잉여가 한낱 감자인 것에 고유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잉여를 마음으로 치환하면 당연한 말이다. 허나 (연인끼리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주고받는) 생필품이란, 실용적 가치로 빼곡하여 ‘잉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을 뿐더러 실용성이 0에 수렴할수록 잉여가 오롯이 자리를 차지한다고, 나는 오래도록 생각해왔던 것이다(그래서 남편이 생일선물로 제습기를 사준다는 걸 오우, 진짜 싫은데, 거부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냥 사도 될 것을 ‘굳이’ 선물로 포장하여 건네준다면, 외장하드도 아름다운 액세서리가 될 수 있으며 제습기는 제습기능을 갖춘 애정의 다른 형태이고 감자는 감자가 아닌 것이다.
어쩌다 선물의 역사를 돌아보게 되었느냐 하면, 바로 증여론에 관한 책을 읽어서다. 이 글은 독서일기이니까(며칠 전의 기념일 때문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
주고받는 일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유타 선생은 말한다. 이 행위가 관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거절은 거절할게요, 아니 마음만 받을게요,’ 선물을 둘러싼 방패와 방패의 각축장만 보아도, 우리가 실상 주고받는 것이 무엇인지, 이 행위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선물’, ‘주는 행위’, 그로 인한 ‘기쁨’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받는 행위’, 그리고 ‘감사와 사명’에 대해 말한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며 교환가치로 재단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지, 삶의 의미를 얻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책의 서문에서 철학의 생업이란 인류의 행복한 삶을 위해 개념을 만드는 것이라 했다. 지카우치 유타가 책 한 권의 분량을 들여 ‘증여’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목적 또한 바로 거기에 있다.
누구나 관계를 고민하며, 삶의 의미와 일의 보람을 갈구한다. 이를 목적으로 할 때 증여는 외려 실패한다. 목적이 있는 증여는 증여를 가장한 교환이나 다름없으므로 관계에 부당한 짐을 지우며, 삶의 의미는 증여의 결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주어야 할까. 먼저 내가 무엇을 받았는지 깨닫는 데서 시작하라고 책은 조언한다. 지나간 관계로부터, 또한 세상의 ‘이름 없는 영웅들’로부터 돈으로 살 수 없는 ‘선물’을 받았으며, 내게 ‘없는’ 것이 아니라 ‘받아서 갖게 된’ 것을 헤아리라고. 모든 증여는 받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나는 되새겼다.
삶은 불안정한 평형점에 놓여 곧잘 추락하고 만다. 그럼에도 자신의 일이 헛된 노역이 아니라 사명이라 생각하는 시시포스들이 무너진 균형과 질서를 다시 정상으로 회복시킨다. 그들 덕에 얻은 일상 속 무수한 선물에 감사하는 것, 그 답례로 다른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 무언가를 얻기 위해 증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미 받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증여하는 것, 그 결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삶의 의미를 얻는 것. 이 같은 증여와 감사의 연쇄가 삶과 세계를 지탱한다는 오랜 진리를 이 책은 상기시킨다.
저자는 영화와 문학, (언어/과학)철학 등을 동원하여 논리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 쿤의 변칙현상, 발산적 사고와 수렴적 사고, SF적 상상력 등이 증여의 속성과 요소, 조건 등으로 이어지는데, 이 플로우가 신박하고 재미있었다.
인간성과 인간다운 삶을 재조명해야 하는 이 혼란한 시기에 일독하면 좋을 책.
"역설적이게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언가가 ‘없음’은 잘 알아채지만, 무언가가 ‘있음’은 깨닫지 못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거기 있는 것’을 언어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저 거기 있는 것들이 실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 그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야 마땅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들이 만약 없어지면 정말로 곤란해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p206
우리는 언제나 타인의 선의를 놓치고 맙니다. 정확히 말해서 사랑은 그것이 사랑인 이상 발견하지도 눈치채지도 못하도록 건네집니다. 사랑은 산타클로스의 선물처럼 정체를 숨긴 채 우리 곁으로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능한 일이란 ‘이미 도착한 편지를 다시 읽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이미 도착해 있는 편지를 읽을 수 있는 인간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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