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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Mar 15. 2022

시간에 닳아버린 펜처럼

네덜란드에서 더치페이를 해 버리다. 

정말 오랫동안 써 오던 펜 홀더가 부서졌다. 

잔뜩 금이 가서 언제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었지만 막상 떨어져 나간 조각을 보니 마음이 허했다. 


이음새에 금이 가다 못해 조각이 툭.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버리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실은 이 회색 홀더 전에 까만색 홀더를 쓰고 있었다. 대학생 때부터 써 오던 거라 졸업 후 회사에서도 잘 쓰고 있었는데, 그때도 수명을 다해 버려서 이음새가 깨져버렸기에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가볍게 커피를 마시면서 회사 선배에게 그 펜 홀더 이야기를 했던가, 아니면 선배가 내 펜을 유심히 봤던 걸까. 뭐, 그 배경은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기억난다. 어느 날 선배는 퇴근하면서 "이거 니 거야~" 라며 책상 위로 무심히 새 홀더를 건네줬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배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하던 그 순간. 회사원 시절의 따뜻한 기억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 펜 홀더를 쉬이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오래오래 쓸 생각에 유럽으로 오면서도 리필심을 잔뜩 사 왔다. 덕분에 이사할 때마다 이고 지고 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 펜 홀더도 깨져버리고 말았다.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만 나라는 사람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있을 때나, 지금 유럽에 있을 때나, 달라진 건 주위 환경뿐이라고. 


그런데 며칠 전 소스라치게 놀란 일이 있었다. 


언젠가 한국어 수업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다른 동료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여기에선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제 대학 졸업반인 한국인 선생님이었다. 선생님께 어디 가시냐고 물었다. 마침 집에 가기 전에 점심 때우러 가시는 길이라길래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근처 쇼핑몰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이라고 해도 잡화점 옆에 붙어 있는 간이식당이라 학식처럼 트레이에 원하는 것을 담고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각자 샌드위치와 라자냐를 먹기 시작했다. 별 거 아닌 수다를 떨면서. 다 먹고 나서 다음 주에 뵙겠다는 인사와 함께 우리는 헤어졌다. 그렇게 점심 한 끼 즐겁게 때웠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불현듯 떠올랐다. 


나, 지금 뭐 한 거지? 열 살은 더 어린 한국 유학생이랑 밥 먹으면서, 좋은 데 데려가지는 못할 망정 지금 더치페이를 했어?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워낙 끈끈한 대학 문화와 한국 기업 문화를 거쳐 오면서 '연장자가 밥을 산다, 챙긴다'는 문화는 내 안에서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개념이 내게서 어느샌가 사라졌던 것이다. 


아, 그렇게 몸에 밴 문화라고 해도 결국엔 습관에 지나치지 않는다.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나도 펜 홀더처럼 나도 모르게 삭아가고 변해갔다. 


이 이야기를 하니 동생은 거기에 대고 "습관이 바뀌고 결국 사고도 바뀌어 갈 것"이라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했다.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 아니라 애매한 '이민 1세대'의 사고방식을 갖게 될 것인가? 


참고로 나는 내가 이민을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잠시 여기 살아 보는 것뿐이지. 그래서 차라리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면 또 몰라도,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사람이 되는 건 좀 별로인 것 같다. 그래, 그나마 이런 변화를 명시적으로 알아차리게 되어서 다행이다,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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