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산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있나요
5월이다!
지난 주말에는 기분 전환을 할 겸 독일에 다녀왔다. 2년 만에 방문한 독일은 어쩐지 낯선 느낌이었다. 네덜란드와는 다르게 여전히 마스크를 많이들 쓰고 있었고, 도심에는 자전거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원래 이런 분위기였나, 싶던 차에 사람들의 익숙한 옷차림이 보이고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조금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외국을 떠나 낯선 외국으로의 여행. 우리는 그곳에서 한식당과 각종 한국 디저트를 섭렵하면서 고향을 느끼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출산 계획서는 산모의 입장에서 출산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면 좋을지에 대해 작성한 문서이다. 여기에 적힌 것에 대해 조산사와 상의해야 해서 나는 여러 출산 계획서를 틈틈이 보며 초안을 작성했다.
고통 경감은 어떻게 할 것인지, 분만실의 분위기는 어떠하면 좋을지, 출산 후 후처치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등을 작성하면서 내가 내 출산에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어딘가에 제시된 대로, 누군가가 제안한 대로 진행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한 번 더 생각하고 내 글로 써내려 가는데 그 기분이 참 묘했다.
그리고 34주 정기 검진 전에 조산사 N에게 이 계획서를 송부했다. 한 줄씩 읽으면서 작성한 계획서에서 어떤 부분이 가능한지, 어떤 부분이 이 문제가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산사 N은 나의 출산 계획서에서 흥미로운 부분들을 자신의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출산할 때 '거울을 쓰고 싶다'는 요청이나 '회음부 열상 주사(Perineal laceration injection)' 등 네덜란드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새로운 내용을 재밌어했다.
1. 무통주사(Epidural)를 맞기까지 요청 시점으로부터 최소 2시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아기의 심박수 측정 등에 1시간이 걸리고, 무통주사를 맞아도 좋은 시점이라고 결정해도 마취과 의사가 오기까지도 약 1시간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 무통주사를 맞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걸어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진통은 호흡법, 마사지 등 침대 위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견뎌야 한다.
3. 나는 예정일이 지나면 거의 바로 유도분만을 하기를 원했는데, 보통 프로토콜은 예정일이 지나고 1주일 이후에 유도분만을 한다고 한다. 물론 그때 산모의 상태에 따라 더 일찍 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41주 0일까지 기다린다고 하니 한국보다는 조금 느긋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4. 겸자(Forceps)나 진공 흡착기(Vacuum) 사용은 최소화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조산사 N은 이제 겸자는 분만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 2시간 넘게 힘주기(Pushing)를 하거나 △ 태아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 산모가 탈진할 경우 진공 흡착기는 사용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5. 탯줄은 박동이 자연스럽게 멈추고 나서 자르게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거의 대부분 이렇게 하니까 걱정 말라고 했다. 다만 탯줄이 태아의 목을 감고 있는 등 필요한 경우에는 바로 자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6. 출산 후 피부 접촉(Skin-to-skin contact)을 1시간 정도 하게 해 달라고 이야기했더니 이 부분도 보통 프로토콜에 명시되어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이 부분에서는 정말 마음이 놓였다. 아기를 신생아실이나 검진실로 데려가지 않고 산모와 함께 충분히 있게 해 줄 수 있다니!
7. 아이의 첫 목욕은 병원에서 하냐는 질문에 첫 목욕은 신생아는 체온 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생후 3일째나 되어서야 집에서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즉, 산후조리사의 몫이라는 것. 생후 3일째까지는 수건에 물을 묻혀서 몸을 닦아주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했다.
8. 비타민K는 생후 8일부터 3개월까지 일정량을 액상으로 먹이면 된다고 했다. 따로 병원에서 주는 건 아니고 산후조리사나 약국에서 구입하면 된다고 했다.
9. 병원에서 제공되는 환자복 같은 건 따로 없고 주사를 놓을 때 초록색 가운 정도만 제공되니 병원에서는 편안한 티셔츠를 입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조산사 N은 마지막으로 이 출산 계획서를 출력해서 병실에도 비치해 두라고 조언했다. 물론 바쁜 상황에서는 의료진이 읽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35주에는 오랜만에 초음파를 보러 갈 예정이다. 아마 별일 없으면 마지막 초음파 검진이 될 것이다.
과연 '치즈'는 얼마나 자랐을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배 안을 점령하고 있는 거대한(?) 느낌인데, 34주 정기 검진인 오늘도 조금 작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동양 아기니까'라는 말을 덧붙이긴 했다마는. 얼마나 작길래? 1주일만 더 기다려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