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프롤로그
39주 2일. 이 날은 마지막으로 조산원 정기 검진이 있었다.
39주가 되자마자 네덜란드로 날아 오신 엄마, 그리고 남편과 함께 조산원에 들어서자 조산사 K와 신입 조산원 L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L이 팀에 합류했다는 소식은 익히 SNS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남자라는 사실에 어쩐지 조금 긴장했다.
L이 간단히 혈압을 체크하고 태아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궁금한 점이 있냐고 물었다. 사실 이제와서 더 궁금한 점이 있을리 없었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의 신입 조산사를 위해 몇 가지 질문을 조금 쥐어짜 냈다. 친정 엄마는 언제쯤 아기가 나올 것 같은지를 물어 봤다. 조산사 K는 쿨하게 이야기했다.
"그걸 내가 알면 돈을 많이 벌지."
엄마 앞에서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의사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 주겠지만 여기서는 모르는 건 모른다고 그냥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조산원을 나서면서 엄마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말 옛스럽다'며, 수동식 혈압 측정기부터 시작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날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 셋은 언제 출산할 건지 내기를 해 보자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몸이 무거울 뿐 가진통 따위도 없었기에 40주를 넘은 날짜를 이야기했고, 남편과 엄마도 그 즈음으로 날짜를 이야기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그리고 39주 3일로 넘어가는 새벽.
미친듯한 태동에 잠을 깼다. 보통 내가 잠을 잘 때는 태동도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화장실로 향했다. 이슬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이슬이라기보다는 생리 1일차와 비슷한 출혈량이라 생각했다. 깜짝 놀라서 당장 조산원에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윽고 태동이 평상시처럼 느껴져서 이슬이라고 확신하고 우선 아침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어도 잠을 쉬이 청할 수가 없었다. 살짝 긴장한 것도 있었지만 약간의 불규칙한 진통이 간지럽혔기 때문이다. 거의 열 달 동안 잊고 있던 생리통과 비슷했다.
겨우 두어 시간을 자고 나서 출산 전 마지막 한글학교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과 숙제를 확인하고 조금 이르게 기말고사를 보고, 남은 두 번의 수업 인수인계를 마지막으로 하고 나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었다. 엄마의 따뜻한 손맛이 담긴 삼계탕을 먹고, 이젠 정말 마지막 외출이 될 거라는 생각에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정말 그건 마지막 외출이 되었다.
무사히 출산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조금 짧은 호흡으로 글을 올리며 이 매거진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