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일기
36주 이후부터는 1주일에 한 번씩 검진을 다녀오고 있다.
하던 일도 대략 마무리를 지음과 동시에 집에서는 아이를 맞이 할 준비를 시작했다. 아기 가구를 들여놓고 침구와 옷, 손수건을 빨래하기 시작했다. 전력과 물을 아끼기 위해서인지 유럽 세탁기들은 어지간한 아기 코스가 3시간은 넘어가게 설정되어 있어서 말 그대로 '캐파 풀가동'으로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밀린 일기를 쓰듯 짧게 검진 기록을 남겨 놓는다.
살짝 감기 기운이 있던 날. 조산사 M과 함께 마지막 초음파를 봤다. 이젠 한 화면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커 버렸다.
사실 이 날 아기의 예상 몸무게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머리 둘레, 배 둘레, 허벅지 길이 등을 재야 했었는데 머리가 골반에 잘 들어가 있어서인지 제대로 머리 둘레를 잴 수가 없었다. 한국이었다면 어떻게든 다시 쟀겠지만 우리의 쿨한 네덜란드 조산사들은 '다른 수치 보니 주수대로 잘 크고 있는 것 같아'라며 대충 넘어갔다.
그나마 다리가 조금 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즐거웠다. 엄마 아빠가 (한국인 평균보다는) 키가 크니까 뭐...
10분도 안 돼서 끝난 정기 검진이었다. 혈압과 태아 심박수를 확인했다.
이 날 나는 다시 한번 '제발 집에서 출산하지 않도록 해 달라'며 조산사 N에게 또 한 번 강조했다. 그 전날 동료 선생님의 출산이 있었는데, 병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그냥 낳았다는 이야기를 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가정 출산이라 오히려 좋았다는 점을 이야기해 주셨지만 나의 생각은 여전히 확고하다. 병원으로 가겠다. 어떻게든.
이런 내 생각을 반영하듯 조산사 N은 진료 차트에 'Please take it seriously when she calls, she has fear for home delivery.'라고 기록해 놨다. 이쯤 되면 진통 올 때 병원을 좀 빨리 알아봐 주겠지?
오랜만에 조산사 K를 만났다. 임신 초반에 만나고 거의 여덟 달 만이었다.
이번 검진도 아주 빠르게 끝났다. 태아 심박수가 조금 낮아져 세상에 나올 준비를 슬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반면 나는 막달 들어 계속 저혈압으로 나오고 있는데 출산 후 운동을 시작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얼른 근력 운동을 해야 할 것 같다. - 그나마 있던 근육 조차도 다 빠지고 있는 기분이다.
참, 우리 조산원에는 조산사 6명이 있는데 6월에 다수가 휴가를 가기 때문에 막내인 조산사 N과 K, 두 명이 대부분의 상담과 진료를 진행할 것 같다. 추측컨대 나도 이 둘 중 한 명과 병원에 가겠지, 싶다.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