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민 May 23. 2022

[36주] 원하는 분만 병원에 못 갈 수도 있다더니

병실은 다 텅텅 비어 있는데요?

한 30주쯤 되었을까? 근처 분만 병원 설명회(Open Day/Information Session)가 있다는 소식이 조산원 동기방에 공유되었다.


병원 조산사의 안내 하에 분만실 구경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솔깃했는데, 아쉽게도 네덜란드어로 진행된다는 소식에 나는 포기했었다. 물론 중요한 정보들은 단톡방에 공유가 되어서 대략적으로 병원 출산의 느낌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산원 동기들의 출산 소식이 이어졌다. 의료적 개입이 필요한 산모들은 이미 병원이 지정되어 있어서 스케줄에 따라 해당 병원에서 무사히 출산했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은 외래 산모는 자리가 없어서 20km가량 떨어진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어느 케이스든 무사히 출산을 마치고 모두 퇴원을 했지만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내심 '정말 집에서 출산하게 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중, 네덜란드어 대신 영어로 분만 병원 설명회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산예정일 전이니 가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신청을 했고, 이윽고 담당자에게서 확인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5월 모일 저녁, 약 10명의 산모가 조용한 분만 병원 한 켠에 모였다. 물론 산모들의 보호자도 함께였다. 병원 조산사 Y가 우리를 맞이했다.


병원 조산사(clincial midwives)는 뭐야? 네덜란드의 산모 케어 모델


네덜란드의 산모는 의학적 위험도에 따라 1차, 2차, 3차로 나누어 담당이 정해지는데 1차는 GP(가정의학과 일반의)와 일반 조산사가 담당하며, 2차는 일반 병원 소속의 산부인과 전문의(obstetricians)나 병원 조산사(clinical midwives)가 담당한다. 3차는 2차와 달리 대학 병원에서 담당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출처: European midwifes)


나는 건강한 산모에 속해서 GP와 일반 조산사(1차)가 담당하는 중인데 무통 주사와 같은 통증 완화 방법은 이들이 단독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병원(2차)에 외래 환자로 분만을 진행하고 싶은 케이스이다.




병원 조산사 Y는 자기소개와 함께 설명회를 시작되었다. Y는 네덜란드 사람인데 젊을 때 영국에서 일하다 약 4년 전부터 네덜란드 병원에 소속되어 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윽고 병원의 의료진과 시설, 그리고 무통 주사 등 병원에서 제공되는 고통 경감 방법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산모들의 가장 큰 궁금증은 병원에서 언제 퇴원시키느냐 - 언제 쫓겨나느냐 - 였는데, 별 이상이 없다면 분만 후 3시간, 제왕절개를 한 경우 약 이틀 후 퇴원이 방침이라고 했다.

휠체어를 사용하려면 쇼핑 카트처럼 동전을 넣어야 한다고. 주차는 24시간까지 무료. 뭔가 짠돌이스럽다 ㅎㅎ
기본적으로 모자동실이라는 점은 늘 마음에 든다.


넉넉한 분만실, 모자란 인력


그리고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 실제 분만실을 보기로 했다. 총 여섯 개의 분만실이 있고, 회복실로 보이는 2인실이 드문드문 보였다.


생각보다 꽤 넓었다. 창문이 있는 분만실.
고통 경감 및 수중 분만을 위해 필요한 간이 욕조(Birth Pool). 물론 나는 Epidural(무통)을 달 예정이니 쓸 예정 없음.
분만 의자. 원래 무통을 선택한 산모에게는 쓰지 않지만 요즘은 써 보는 추세라고 함.


그런데 놀랍게도 여섯 개 분만실 모두 텅텅 비어 있었다. 아, 산모가 올 연락을 받았는지 딱 한 곳만 간호사가 소독과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의아했다. 이렇게나 가까운 병원에 방이 비어 있는데 왜 우리 조산원 동기는 멀리까지 가서 분만을 해야 했을까?


병원 조산사 Y는 이렇게 답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조산사 1명 당 최대 산모 2명까지 동시에 보는 것이 가능해요. 그런데 우리 병원은 3교대, 각 교대 시간에 2명의 조산사가 근무를 해요. 그러니 분만실이 아무리 많아도 3~4개 정도만 다 쓸 수 있어요. 물론 무통 주사 같은 의료 개입이 필요 없는 경우에는 일반 조산사가 이 시설들을 쓸 수도 있으니 매번 비어 있는 건 아니에요."


모두의 끄덕임 속에 머쓱했던지 Y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 여러분, 나중에 혹시 여기서 병원 조산사가 되고 싶으면 꼭 연락하세요. 진심입니다."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병원은 생각보다 병원은 조용했다. 사진은 병원 로비.

약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진 설명회는 이렇듯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조용한 병원에서 '치즈'를 만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독일 종합병원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시장 바닥처럼 왁자지껄해 정신이 없었는데다 독일 특유의 딱딱한 분위기에 계속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네덜란드 병원은 조금 느긋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라서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집에서 10-15분 거리라 어쨌든 편할 것 같은데.


상황은 그때 되어 봐야 알겠지, 뭐.

매거진의 이전글 [35주] 실망스러웠던 네덜란드의 베이비페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