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결함이 아니라는 것
지구 상 생명의 시원(始原)은 바다다. 바다와 마주할 때 느끼는 형언하기 어려운 가슴 벅참. 그것은 유전자에 각인된, 바다를 향한 향수병이 호전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지구 표면의 약 70.8%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바다에는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다양한 생명체가 있다. 그중에서 영화 <니모를 찾아서(2003)>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니모는 흰동가리(Clownfish)다.
오렌지색 몸통을 가로지르는 세 개의 하얀 줄무늬가 아름다운 니모. 니모는 선천적으로 오른쪽 지느러미가 왜소하다. 물고기에게 지느러미로 헤엄치기는 매우 중요한 능력일 텐데, 니모는 상대적으로 커다란 결핍이 있는 셈이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속편인 <도리를 찾아서>의 주인공은 도리다. 도리는 영화 <아바타>에 등장한 '나비족'을 떠오르게 하는 푸른색의 블루탱(Blue Tang)이다. 도리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 도리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물고기다. 이처럼 <니모를 찾아서>와 <도리를 찾아서>는 모두 신체적 결핍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하지만 결핍은 결함이 되지 않는다.
니모가 그랬던 것처럼 도리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혜를 발휘해 문제를 해결한다.
니모와 말린(니모의 아버지) 곁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도리에게 불현듯 부모와 고향에 대한 단편적 기억들이 떠오른다. 도리는 니모와 말린과 함께 부모를 찾아 모험을 시작한다. 대양을 가로지르는 여정이니 그야말로 '엄마 찾아 삼만리'. 단기기억상실증인 도리에게 이 여행은 연어의 모천회귀 과정처럼 순탄치 않다.
<도리를 찾아서>는 영화 <메멘토>처럼 기억 조각들을 군데군데 흩뜨려 이야기 퍼즐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인간에게 잡히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물고기들의 협동 작전은 기발하다. 귀여움 넘치는 바다 생물 캐릭터들의 유영은 절로 입꼬리를 올라가게 한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미스틱' 뺨칠 정도로 변장술에 능한 문어 '행크'는 사람에 의해 다리가 하나 잘려 나갔지만 점쟁이 문어 '파울'보다 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특급 조연으로 손색이 없다.
결핍이 곧 결함은 아니라는 것, 인생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 우연이 인생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 <도리를 찾아서>에는 곱씹어 볼만한 메시지들이 여럿 담겨 있다. 하지만 <도리를 찾아서>가 흔히 성인 관객들이 픽사 애니메이션에 기대하는,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도리의 부모 찾기가 감동적이긴 하지만 마음을 파고드는 아릿함이 없기 때문일까. 어른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공감 요소가 없어서일까. 그런데 '픽사 애니메이션은 어른들에게도 큰 감동을 줄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는 그대로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어른의 아집 일지 모른다. 어릴 적 나를 찾아서 귀여운 애니메이션 한 편 즐기는 것도 괜찮잖아?
* 영화 <도리를 찾아서>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