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쉼을 주어서
내가 특별히 힘들었다거나 과한 고난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살이나 자해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모두 심각한 우울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죽을 만큼 힘들 때도 있고, 그 힘듦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당연히 있으니까.
다만 나는 행복의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춘 내가, 힘들만한 외적인 이유가 없는데 힘들어한다는 자체가 고난이었다.
가정도 행복하고 큰 문제도 없는데 왜 나는 슬프고 우울한가. 그런 생각이 스스로의 감정을 억제하게 했고, 나 자신을 돌볼 기회를 박탈했다.
그래서 우울증을 치료하는 기간이 나의 부정적 감정을 받아들이는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우울함과 슬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 건강하게 우울해하고, 내 슬픔에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우울증이 완전히 낫거나, 갑자기 불안해지는 게 아예 없어진 게 아니지만 그 불완전한 나를 내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불완전한 엄마로서의 나도 견뎌낼 수 있게 했다.
아 나는 우울하고 비정상적인 인간이구나. 모지란 인간이구나 깨닫고서 나아졌다.
나는 더는 나아지려고 더 잘하려고, 더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기보다 지금 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즐겁게 하려고 한다.
노력해서 잘 해내는 것을 바라기보다 그저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한다.
나에게 쉼을 주고 힘을 주고 여유를 준 우울증에게 고맙다.